[책마을] 군산공장 문 닫은 날, 내 일자리도 사라졌다

입력 2021-12-23 18:15
수정 2021-12-24 02:04
군산 토박이 김성우 씨(가명)는 20여 년 전 스물여섯 살 때 대우자동차 군산 공장에 취직했다. 대우에 다니면 1등 신랑감이던 시절이었다. 이후 한국GM으로 이름을 바꿔 단 이 회사는 2018년 공장 운영을 중단했다. 김씨는 고민 끝에 희망 퇴직서를 냈다. 청소업체를 시작했지만 녹록지 않았다. 이후 여러 작은 공장을 전전해야 했다.

《실업 도시》는 김씨와 같은 사람들을 통해 ‘제조업 도시’라는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전북 군산을 조명한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한국GM 군산 공장 등으로 인해 활기 넘쳤던 도시는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직격탄을 맞았다. 이런 일은 한국의 다른 도시는 물론이고 세계 여러 곳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경남 거제가 그랬고, 미국 디트로이트가 그랬다. 2017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올해의 경제·경영서’로 선정한 《제인스빌 이야기》도 GM 공장이 문을 닫은 미국 위스콘신주 제인스빌의 모습을 그렸다.

책은 군산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린다. 자본주의와 GM을 문제의 원흉으로 돌리지 않는다. “사실 군산이야말로 이러한 효율성과 엄혹한 구조 덕에 호황을 누려 성장한 도시였다”고 말한다. 군산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도 피해가 크지 않았다. 고유가 덕분에 군산 공장에서 생산되는 소형차가 잘 팔렸다. 하지만 유가가 2013년 이후 하락세로 접어들자 소형차 인기도 꺾였다. GM은 이미 2008년 미국을 시작으로 2015년 러시아와 인도네시아, 2017년엔 호주에서 공장 문을 닫았다. 군산도 세계 경제와 산업 구조 변화란 큰 흐름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경제 이론에 따르면 생산 요소인 ‘노동력’은 일자리가 없어진 지역에서 일자리가 생기는 지역으로 옮겨가야 마땅하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실직한 사람은 자기가 살던 터전을 떠나기 힘들다. 그렇게 군산에 남은 사람들은 임금이 낮고 불안정한 삶을 이어가야 했다.

책의 밀도가 조금 떨어지는 점은 아쉽다. 저자가 관찰자로서의 서술을 줄이고, 군산의 역사와 등장인물의 서사에 집중해 오밀조밀하게 이야기를 엮었다면 더 좋았을 듯하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