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택담보대출 증가세가 둔화되고 주택 거래가 위축되면서 정부의 공격적인 가계대출 총량 규제 정책이 드디어 성과를 나타낸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시행한 정책이 의도한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한다면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우리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리는 것은 아닐까?
최근 몇몇 지역을 중심으로 주택 실거래 가격이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집값 하락세가 본격화된다고 판단하기엔 아직 이르다. KB 아파트 매매가격지수에 따르면 2017년 이후 전국 아파트 가격은 37%, 서울은 62% 상승했다. 정부는 대출 규제 강화뿐만 아니라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 세제까지 총동원해 주택 구매 수요를 억제하고자 했지만 주택 공급이 제한된 상황에서 집값을 잡을 순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나타나는 주택 가격 하락은 공급이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일까?
안타깝지만 정부가 발표한 3기 신도시 개발, 공공 재건축 등의 주택 공급 확대 정책은 모두가 원하는 양질의 주택 공급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즉, 주택 가격 상승의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작금의 주택시장 위축은 정부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의 조기 도입을 결정하고 가계대출 총량을 옥죄는 등 전방위적인 대출 규제 정책을 시행함에 따른 숨 고르기일 뿐이다.
누군가는 단기적으로라도 주택시장을 안정시킨 공격적 대출 규제 정책에 박수를 보낼 수 있다. 적어도 정부가 거짓말쟁이는 아니라는 점을 국민에게 보여줬으니 말이다. 하지만 주택 공급 제한으로 주택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면, 혹은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여전히 주택 구매를 원하는 수요자가 많다면, 가계대출 규제는 이들로 하여금 소비를 줄여서라도 주택을 구매하게 할 수 있다. 이들의 소비 감소는 직접적으로 소비자의 복리후생과 총수요를 감소시켜 투자 위축과 국내총생산(GDP) 감소를 초래할 수 있다. 최근 연이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과 오미크론 변이 확산 등 추가적으로 경기를 위축시킬 수 있는 요인까지 겹친다면 가계대출 잡으려다 민생경제가 무너질 수 있다.
이런 대출 규제는 풍선 효과로 제도권 밖 대출을 늘려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우리에게 대출은 일종의 보험이다. 갑자기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건강 문제로 휴직하는 경우 등 상황에 따라 가구 소득은 변동할 수 있다. 또한 일상적인 소비 지출 이외에 질병 치료를 위한 병원비, 주택 수리 비용 등 예상치 못한 지출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렇게 소득이 하락하거나 소비 지출이 늘어날 경우를 대비해 우리는 저축을 한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저축을 충분히 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저축이 많더라도 거주 주택 등 환금성이 낮은 자산에 묶여 있을 경우 대출을 이용해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다.
그런데 금융회사 대출이 막히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소비자나 자영업자는 가족이나 친지 등 사인 간 대출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사인 간 대출은 제도권 내에서 보호받지 못하므로 채권자가 감당해야 할 리스크도 크다. 따라서 사인 간 대출이 증가할수록 개인 간 분쟁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이런 사인 간 대출로도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없는 사람은 ‘대출절벽’으로 내몰릴 따름이다.
가계대출 급증은 현상일 뿐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의 원인이 아니다. 대출 실행 시 차주의 상환 능력을 우선 고려하는 선진적인 금융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가계대출 급증의 근본 원인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대출 총량을 꽁꽁 묶어 그 현상만을 없애려는 정책은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처럼 가계대출 잡으려다 민생 경제를 무너뜨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