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은 집값·배달비 빠진 물가…체감은 20%인데 지수는 고작 2%↑

입력 2021-12-21 17:29
수정 2021-12-22 10:23
정부가 예상하는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4%다. 올 들어 마트에서 판매하는 육류 가격이 20% 안팎 오르고, 치킨과 피자 등 배달음식 가격도 10% 치솟은 것을 감안하면 미미한 상승폭이다. 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8%, 한국은행이 내놓은 11월 생산자물가 상승률이 9.6%에 이른 것과도 대비된다. 생산자물가는 토마토(46.7%), 합금철(19.5%) 등을 중심으로 오르며 2008년 10월 이후 사상 최고 상승폭을 기록했다. 이처럼 유난히 낮은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물가 산정 과정의 여러 문제에서 비롯된다. 체감과 왜 이렇게 차이 나나우선 통계청의 소비자물가 산정은 개인 소비자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다. 기업 구매와 정부 구매 역시 소비자물가 산정 대상에 포함된다.



물가 지수를 구성하는 460개 품목도 이 같은 경제 주체들의 소비를 모두 반영한다. 경제 주체들의 구매 비중이 높거나, 다른 품목 가격에 영향을 많이 주는 제품들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통계청은 이들 품목의 가격과 구입 빈도를 따져 각 품목의 가중치를 각각 정한다. 460개 품목 전체의 가중치를 1000으로 봤을 때 △주택 및 공과금 165.9 △식료품 및 음료 137.6 △음식 및 숙박 131.8 △연료 및 교통비 112.6 등이다.

기업과 정부의 소비도 반영되는 만큼 물가 지수 구성 품목 선정과 가중치는 가계가 체감하는 것과 어느 정도 다를 수밖에 없다. 통계청이 매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발표하며 따로 가계 소비가 많은 품목을 중심으로 생활물가지수를 내놓는 이유다. 지난달 생활물가지수 상승률은 5.2%로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3.7%)보다 높았다.

품목별 가중치도 실생활과 동떨어진 것이 많다. 한번에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씩 오르는 전세 가중치는 48.9, 월세는 44.8로 전체 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5%에도 못 미친다. 많아야 10만원 안팎인 휴대전화료(36.1)보다 가중치가 약간 더 클 뿐이다. 올해 가격 상승률이 32.7%에 이르렀던 달걀 가중치는 2.6으로 사과(3.0)에도 못 미친다. 달걀이 요리에 사용되는 빈도를 감안할 때 대체재가 많은 사과보다 가중치가 낮은 것은 비합리적이라는 평가다. 일반 가정에서 한 달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한 생선회 가중치가 9.0으로 자주 먹는 돈가스(2.9), 자장면(1.6)보다 높다. 6년 묵은 산정 기준도 문제대상 품목 선정도 문제다. 가장 논란이 큰 것은 소비자물가에 집값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 10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집값이 소비자물가 지수에서 제외돼 실제 물가 상승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는 문제가 진지하게 논의됐다. 미국과 같은 다른 선진국들이 집값을 소비자물가 지수에 포함하고 있는 점과 대비된다.

5년에 한 번 이뤄지는 품목 조정도 통계 왜곡을 불러오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지난달까지 발표된 소비자물가 상승률 구성 품목은 2015년, 가중치는 2017년 결정됐다. 6년 전 기준을 끌고오다 보니 코로나19 사태 이후 달라진 소비 패턴이 소비자물가 지수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 오르는 배달료는 품목에서 빠져 있고, 불가능해진 해외 단체여행 비용 가중치는 13.8로 대부분의 생필품보다 높다. 미국 등은 소비 트렌드 변화를 반영해 매년 품목과 가중치를 조정하고 있다. 천소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기술 변화가 빠르고 새로운 제품에 대한 수요가 높은 점을 감안하면 품목 조정 주기를 단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계층별 소비 패턴 차이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점을 감안해 그에 맞는 지표를 개발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통계청장을 지낸 박형수 K정책플랫폼 원장은 “소득계층별로 소비자물가를 산출해야 서민들이 느끼는 물가 상승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며 “도움이 필요한 저소득층에 맞춘 재정·통화정책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보다 낮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보다 완화적인 재정정책으로 이어져 국민 생활을 악화시킨다는 비판도 있다.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명예회장은 “정부에서 돈을 풀면 물가가 오를 수밖에 없고, 늘어난 적자 국채로 금리는 뛴다”며 “물가를 잡는 가장 유효한 방법은 정부 스스로 확장재정을 자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