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 판매보다 브랜드의 정체성과 문화를 전해야 진정한 브랜드 헌터죠.”
국내에 겐조, 베르사체 등 해외 브랜드를 들여온 권기찬 웨어펀인터내셔널 회장(사진)은 1세대 브랜드 헌터로 꼽힌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 1년에 수십 번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을 찾아다닌 노력 끝에 30여 개 브랜드를 국내에 들여왔다. 김진형 랄프로렌코리아 대표, 육진 피아제 지사장 등이 모두 권 회장 밑에서 근무한 브랜드 사냥꾼 출신이다.
그는 “브랜드 헌터에게 필요한 자질은 해외 브랜드를 발굴해오는 안목, 장기적인 마케팅 능력과 브랜드 철학”이라고 강조했다. 권 회장은 해외에서 처음 겐조를 들여온 1986년 당시, 브랜드 정체성 유지를 위해 보그 등 패션 전문 잡지에만 광고를 내보냈다. 그는 “소비자들에게 브랜드가 지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제품이 추구하는 가치와 매력을 알고 있어야 브랜드에 호감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내에 30개 넘는 패션 브랜드를 소개했지만 이 중 성공하지 못한 브랜드가 더 많았다고 한다. 이런 경험을 통해 브랜드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게 중요하다는 이치를 깨달았다. 권 회장은 “독특한 디자인의 메종 라크로아를 들여와 수년간의 영업적자 속에서도 버텼다”며 “신진 브랜드를 국민에게 소개해준다는 사명감으로 사업을 해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좋은 브랜드를 보는 ‘눈’도 중요한 요소다. 패션 브랜드를 살펴보는 게 일이 아니라 생활이 돼야 좋은 브랜드를 선택하는 안목을 기를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권 회장은 “월급을 모아 발렌티노, 지방시 같은 명품을 사 입으며 문화를 익혔다”며 “좋은 패션 브랜드를 보는 눈은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다만 최근의 해외 패션 열풍에 대해서는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권 회장은 “5~6년 전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브랜드가 인플루언서의 힘을 등에 업고 ‘반짝’ 인기를 끌다가 사라진다”며 “상품을 팔기보다 브랜드의 문화와 철학을 팔아야 ‘롱런’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