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골격계 질환 호소땐 조사 없이 산재로 인정"

입력 2021-12-21 17:48
수정 2021-12-22 03:37
정부가 산재 승인율이 높은 근골격계질병은 아예 산재로 인정한다는 내용의 고시 개정안을 예고해 논란이 일고 있다. 곧 시행될 중대재해처벌법에 이어 기업에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한 특정 직업군 근로자에게 근골격계 질환이 발병할 경우 별도 조사 없이 산재로 추정한다는 방침을 지난 20일 예고했다. 고용부는 산재 인정 기간을 단축해 근로자의 편익을 높이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산재 인정 항목은 2020년 산재 통계에서 승인율이 80% 이상인 근골격계질병이다. 예를 들어 1년 이상 조리사나 객실청소부로 일하다 손목터널증후군이 생기면 산재로 추정된다. 청소원으로 1년 이상 일하다 상과염(테니스 엘보)이 와도 산재로 추정된다. 5년 이상 자동차 정비업무를 했다면 허리디스크 발생 시 산재로 추정된다.

통상 산재는 근로자가 산재를 주장하면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그 여부를 판단한다. 하지만 고시 개정안에 따르면 일단 산재로 ‘추정’된 상태로 위원회에 올라간다. 원칙적으론 산재가 아니라고 증명해 불승인을 내리는 것이 가능하지만, ‘추정’된 경우 현장 자료 조사 절차가 대폭 생략돼 입증이 어려워진다. 또 산재 승인 시간을 단축하라는 압박에 쫓기는 위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불승인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경영계의 분석이다.

고시가 2020년 한 해 통계를 기준으로 마련돼 과학적 근거가 빈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례로 손목드퀘르뱅병(손목건초염)은 지난해 산재로 인정된 사례가 다섯 건에 불과한 데도 추정 규정이 적용된다. 근골격계질병은 퇴행성 질환이라 고령 근로자에게 자연스럽게 발병하는 데도 산재로 추정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근로기간 관리직으로 일해도 해당 업무 종사자라면 추정 규정이 적용될 수 있다.

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본부장은 “개정 고시안은 같은 직종이어도 사업장마다 작업량과 노출 수준이 다른 점을 간과하고 있다”며 “심각한 산재 판정 왜곡, 산재 부정 수급, 집단 산재 신청 등 현장에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