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1일 공동상임선거대책위원장 자리를 비롯해 선거대책위원회 모든 직책을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선대위가 공식 출범한 지 보름 만이다. 물러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조수진 선대위 공보단장과의 갈등이지만 그 이면엔 선대위 조직과 운영을 둘러싼 내부 알력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李 “선대위 직함 내려놓겠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 국민의힘 대표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을 비롯해 홍보미디어총괄본부장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그는 “선대위 내에서의 모든 직책을 내려놓겠다”며 “어떤 미련도 없다”고 말했다.
그간 자신과 갈등을 빚어온 조 단장을 겨냥해 “선대위 구성원이 상임선대위원장의 지시를 따를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 선대위 존재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다만 “당 대표로서 해야 할 당무는 성실하게 하겠다”며 “당 관련 사무에 있어서 후보가 요청하는 사안이 있다면 협조하겠다”고 했다. 윤석열 후보와의 협력 가능성은 열어둔 것으로 풀이된다.
정치권에서는 최근 조 단장과의 갈등이 이 대표 퇴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했다. 이 대표와 조 단장은 지난 20일 비공개 선대위 회의에서 윤 후보 배우자인 김건희 씨의 허위 경력 기재 의혹 대응과 관련해 고성이 오갈 정도로 충돌을 빚었다. 이 과정에서 조 단장은 “왜 대표 말을 듣냐, 난 후보 말만 듣는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이 확산됐다. 조 단장이 이 대표에게 사과의 뜻을 밝혔지만, 이후 이 대표를 비방하는 영상을 출입기자들과 공유하면서 갈등이 악화했다.
조 단장은 직접 사과하기 위해 당대표실을 찾아갔으나 이 대표를 만나지 못했다. 조 단장은 이날 저녁 SNS를 통해 “선대위 부위원장과 공보단장직을 내려놓겠다”며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국민과 당원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의 선대위 퇴진 배경에는 조 단장과의 갈등 외에 이 대표가 외부 인사 영입에서 사실상 패싱당하자 불만을 표출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국민의힘 새시대위원회는 지난 20일 신지예 한국정치네트워크 대표를 수석부위원장으로 영입했다. ‘매머드 선대위’ 문제 노출선대위 내부에서는 이 대표와 조 단장의 감정 싸움뿐만 아니라 비대해진 선대위 조직 자체의 문제가 노출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선대위 관계자는 “이 대표와 조 단장의 갈등은 윤 후보 배우자 의혹과 관련해 후보와 선대위의 대처가 매끄럽지 못했다는 문제로 갈등을 보이다 빚어진 일”이라며 “곪았던 문제가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각종 이슈에 대해 윤 후보와 선대위의 모호한 대응을 지적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윤 후보의 일정과 메시지 간 간극이 컸던 것이 선대위 내 조직이 중구난방으로 따로 놀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윤 후보가 내년 초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찬성 입장을 낸 것이나 당에서 반대해온 노동이사제 도입을 촉구하고 나선 것 모두 선대위 내부 소통의 문제라는 비판이다.
선대위 조직 문제가 불거지자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은 선대위 전면 개편을 시사했다. 김 위원장은 기자들을 만나 “밖에서는 선대위가 ‘항공모함’에 비유될 정도로 거대하게 운영되면서 효율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선대위가 아니냐는 평가가 있다”며 “이대로 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대위 차원에서 ‘기동헬기’를 띄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종합상황실을 보다 강력하게 활용하는 방향으로 심도 있게 선대위를 끌고 가려고 한다”고 했다. 尹, 선대위 분열에 리더십 심판대 올라이 대표가 공동상임선대위원장에서 전격 사퇴하면서 윤 후보의 리더십이 또다시 심판대에 올랐다. 선대위 출범 전 극적으로 이 대표와 김 위원장을 선대위로 끌어들이면서 당내 갈등 봉합에 성공했지만 이후 대처가 안이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당내 일각에서는 윤 후보가 이 대표와 조 단장의 갈등에 적극 개입했다면 이 대표의 사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윤 후보는 ‘이 대표의 사의 표명을 수용하느냐’는 질문에 “김종인 위원장이 ‘이 문제는 내가 맡아서 처리하겠다’고 해서 김 위원장과 얘기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김 위원장이 키를 쥐고 있다는 의미다.
당내에서는 선대위 내홍이 지속된다면 최악의 경우 대선 패배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도 나오고 있다.
이동훈 기자 lee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