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임신부가 길에서 출산해야 하는 현실

입력 2021-12-19 17:30
수정 2021-12-20 08:56
임신부가 병실을 구하지 못해 길에서 출산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한국처럼 전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에서라면 더욱 말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코로나19로 인한 ‘병상대란’ 때문에 그렇다.

18일 오전 0시49분께 경기 양주시에 거주하는 30대 코로나 확진자 A씨가 하혈과 진통을 겪고 있다는 내용의 119 신고가 접수됐다. 구급대원들이 A씨를 구급차에 태우고 인근 병원에 연락을 취했으나, 16곳으로부터 수용 가능한 병상이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 사이 A씨의 진통이 심해져 구급대원들은 원격으로 의료팀 지도를 받아 오전 1시36분께 아이를 받았다.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하게 서울의료원으로 이송됐지만, ‘구급대원들의 활약상’에 기뻐만 하기엔 찜찜하기 이를 데 없다.

코로나19 위중증 환자가 이틀째 1000명을 넘어서면서 의료 현장에서는 “의료 체계가 사실상 허물어졌다”고 호소하고 있다.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를 시작한 11월 첫째주 1명이던 병상대기 중 사망자는 지난주 17명으로 불어났다.

위드 코로나가 시작될 무렵 수많은 전문가들이 “확진자 폭증으로 의료 역량이 한계에 달할지 모른다”고 우려했기에 더 뼈아픈 결과다. 전문가들은 “병상이 충분히 확보돼야 하고, 재택치료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 상황이 불가항력은 결코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데도 코로나 상황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예측했어야 할 방역당국은 되레 지나치게 낙관해 사태를 악화시켰다. 중증화율을 잘못 계산해 놓고 “확진자 1만 명까지 대응이 가능하다”고 자신만만해하기까지 했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의료진은 번아웃 직전이고, 구급차·자택·요양원 등에서 죽어가는 환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일반환자들까지 악영향을 받을 공산이 커졌다는 점이다. 방역당국 스스로가 위중증 환자가 1000명이 넘어가면 일반 환자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1%의 코로나 환자가 응급의료 자원의 절반 이상을 쓰고 있으니, 99% 일반 환자에 대해선 진료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정부의 역할은 국민 1%에 해당하는 문제가 나머지 99%에 악영향을 주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하는 것이었다.

결과는 참담한 실패다. 그래놓고는 “K방역은 국민과 의료진이 이룬 성과인데, 왜 자꾸 실패라고 하나”라고 반문한다.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희생을 감내한 국민이 왜 정부 오판으로 고통받아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