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고속·시외버스 이용객 감소로 교통 소외지역의 ‘허브’ 역할을 하는 지역 버스터미널이 잇따라 휴·폐업하고 있다. 지하철과 고속철 등 대체 교통수단이 늘고 터미널 시설이 노후화해 이용객이 꾸준히 줄어가던 상황에서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다.
17일 각 지방자치단체에 따르면 경기 성남종합버스터미널이 내년 1월 1일부터 1년 동안 휴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성남시의 유일한 고속·시외버스터미널로 코로나19 전 하루 평균 이용객이 7000여 명에 달했으나 코로나19 확산세로 이용객이 반 토막 났다. 성남시가 1억3000만원 규모의 성남형 5차 연대안전기금을 긴급 투입하기로 했지만, 지원 규모가 작아 휴업 사태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지난 8월에는 전남 영암군의 버스터미널 운영 업체가 운영 적자를 감당하지 못해 폐업했다. 이 업체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하루 평균 이용객이 70% 가까이 줄면서 폐업 수순을 밟았다. 이외에도 지난해 12월 충북 영동시외버스공용터미널, 같은 해 6월 경북 성주시외버스터미널이 잇따라 문을 닫았다.
지역 버스터미널의 줄폐업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이용객 감소가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국토교통부와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 등에 따르면 지난해 306개 시외·고속버스 이용객 수는 총 1억809만 명으로,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전인 2019년(2억2895만 명)보다 52%가량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용객이 급감하면서 매표 수수료 수입이 줄고, 터미널에 입점한 상가들의 수익도 쪼그라들면서 경영난이 심각해졌다는 분석이다. 주요 이용 지역인 지방 인구 급감 등으로 이용객이 구조적으로 감소한 것도 경영난 심화 원인으로 꼽힌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지역 버스터미널 폐업으로 철도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지역에선 ‘교통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철도나 지하철이 닿지 않는 소외지역 거주민들의 발이 묶일 수 있는 만큼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터미널 업계가 전반적으로 어려운 만큼 수익 구조 개선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며 “업체별 사업 현황을 파악하고 터미널 업계 의견을 수렴해 지자체와 함께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버스터미널 이용객 노년층 많은데…
'교통 사각지대' 갈수록 늘어전문가들은 지역 버스터미널이 고사하면 지방 벽오지 등을 중심으로 ‘교통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철도나 지하철이 닿지 않는 소외지역 거주민의 교통권이 크게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다.
이는 현장에서 터미널 이용객을 상대하는 관계자들도 동의하는 내용이다. 경기 성남버스터미널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A씨(65)는 “수도권의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성남터미널을 이용하는 어르신이 상당히 많다”며 “전남 순천에서 피부암을 치료하기 위해 한 달에 두 번 분당 서울대병원을 방문하는 사람, 경남 진주에서 차병원을 이용하려고 올라오는 사람 등이 우리 가게 단골손님들”이라고 말했다.
실상이 이렇다 보니 터미널 운영사와 버스 운수업체들은 이용객 감소로 인한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한 버스터미널 관계자는 “코로나19 창궐 후 시외버스 및 고속버스 운행 횟수가 50% 이상 감소해 매달 수천만원의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며 “터미널 사업자는 버스업체의 증차 및 노선 신설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독자적인 경영 개선 및 수익 증대가 곤란하고, 원가까지 상승해 자체적으로 타개하기는 어려운 처지”라고 설명했다.
민간 업체들이 운영하던 지역 터미널이 하나둘 문을 닫자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운영에 나선 곳도 많다. 전남에서는 버스여객터미널 48곳 중 5곳을 지자체가 운영하고 있다.
지난 8월 영암군 시외버스터미널을 운영하던 회사가 코로나19로 폐업을 신고하자 영암군이 직접 운영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코로나 이전 하루 평균 470명이 이용하던 이 터미널은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이용객이 70%가량 급감했다. 운행편도 하루 72회에서 45회로 줄었다. 군이 운영권을 넘겨받은 뒤에도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 2019년 10월 폐업한 전남 광양버스터미널도 민간에서 지자체 직영 운영 방식으로 전환했다.
버스터미널이 교통약자를 위해 꼭 필요한 인프라인 만큼 중앙 정부가 지원을 고려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의견도 있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국토 교통의 척추·갈비뼈 역할을 하는 철도는 건설·운영비가 비싼 데다 구석구석 깔 수 없다”며 “버스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지하철, 고속철은 정부가 앞다퉈 지원에 나서는 반면 버스는 상대적으로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이런 문제가 벌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민간에서 터미널 개발을 통해 재원을 확충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중앙정부, 지자체의 재정 지원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다은/양길성/장강호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