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마케팅도 '가성비 시대'…비인기 종목에 몰린다

입력 2021-12-17 17:24
수정 2021-12-20 08:56

스포츠 마케팅 시장의 ‘큰손’으로 꼽히는 신한금융지주가 최근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종목은 브레이킹이다. 당장 내년 초부터 후원할 선수를 물색하고 있다. ‘비보잉’으로 더 익숙한 브레이킹은 2024 파리 하계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스포츠 클라이밍, 탁구 등에서도 후원 선수를 찾고 있다. 모두 일반인에겐 낯선 비인기 종목이다. 신한금융지주 관계자는 “스포츠를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려는 마케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며 “스포츠만이 지닌 감동을 기업과 연관시키기 위해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명 스타 선수에게 집중하던 기업의 스포츠 마케팅이 최근 들어 비인기·기초 종목으로 빠르게 다변화하고 있다. 그간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제는 비인기·비주류 종목을 후원해 함께 성장하며 기업이 지닌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는 모양새다. 한 스포츠매니지먼트 관계자는 “주목받지 못하는 종목과 선수를 발굴해 후원하는 이른바 ‘투자 마케팅’이 기업들 사이에서 인기”라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과도 맞아떨어지고 투자 대비 효과도 큰 만큼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신한금융지주는 ‘비인기 종목’ 후원에 초점을 맞추고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브레이킹의 경우 아직 파리 대회까지 약 3년이 남았지만 올해 6월 일찌감치 대한민국댄스스포츠연맹 브레이킹 국가대표팀 후원을 시작했다.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브레이킹이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선정됐다는 보도를 접하자마자 후원을 검토했다”며 “대한민국 브레이킹 선수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퍼포먼스를 펼치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KB금융그룹은 육상과 수영, 체조 등 3대 기초 종목 후원으로 성공을 경험했다. 지난 8월 막을 내린 도쿄올림픽 남자 수영에서 ‘신기록 제조기’로 거듭난 황선우(18)가 대표적이다. 그는 자유형 100m에서 아시아 기록 및 세계주니어기록(47초56), 자유형 200m에서 한국 기록 및 세계주니어기록(1분44초62)을 새로 썼다. KB금융그룹조차 예상하지 못한 쾌거였다.

KB금융그룹 관계자는 “황선우 선수가 도쿄 대회 후 세대를 가리지 않고 스포트라이트 중심에 서며 브랜드 이미지도 함께 높아졌다는 게 내부의 평가”라며 “2024 파리올림픽에서 메달을 기대하긴 했지만 도쿄 대회부터 이렇게 빨리 두각을 나타낼 줄 몰랐다”고 했다. 한국 여자 기계체조 최초의 메달리스트 여서정(19)도 KB금융그룹의 후원을 받는 선수다.

후원의 손길이 메말랐던 육상도 기업 후원이 활기를 띠고 있다.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귀화 선수 비웨사 다니엘 가사마(18)도 KB금융그룹이 올해부터 후원을 시작한 선수다. 비웨사는 지난 6월 전국 종별육상경기 선수권대회 100m에서 10초45로 피니시라인을 통과해 대회 신기록을 새로 쓰는 등 한국 최초의 ‘9초대 기록’을 낼 선수로 평가받는다.

올해 초 프로야구단 SK 와이번스를 정리하며 ‘아마추어 스포츠 육성’을 강조한 SK텔레콤의 행보도 남다르다. 핸드볼, 펜싱 등에 투자를 아끼지 않은 SK텔레콤은 최근 브레이킹 국가대표팀과 세계 톱 크루 ‘진조크루’ 후원을 시작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아마추어 스포츠 저변 확대, 글로벌 경쟁력 확대라는 스포츠 육성 철학을 갖고 아마추어 및 비인기 종목을 계속 후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금융그룹도 근대5종을 시작으로 비인기 종목 후원에 뛰어들었다. 우리금융그룹은 최근 도쿄올림픽 근대5종 동메달리스트인 전웅태(26)와 후원 협약을 맺었다. 우리금융그룹 관계자는 “전웅태 선수가 2024 파리올림픽까지 운동에만 집중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