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오픈 커트 탈락 때 정신이 번쩍…마음 가다잡는 계기 됐죠"

입력 2021-12-16 18:08
수정 2022-01-15 00:01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한국 선수들이 지켜왔던 독점 구도가 올해 깨졌다. 그 중심에는 넬리 코다(23·미국)가 있다. 지난 3월 게인브리지 LPGA에서 우승하며 세계랭킹 3위로 뛰어올라 고진영(26)·김세영(28)·박인비(33)의 삼두체제에 균열을 냈다. 이어 메이저대회 우승과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며 랭킹 1위까지 차지했다. 코다는 한국 선수들에게 빼앗겼던 LPGA 투어의 주도권을 스테이시 루이스(36) 이후 12년 만에 미국으로 다시 가져갔다.

코다는 16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이메일 단독 인터뷰에서 “굉장한 한 해였다. 이번 시즌 내 플레이에 만족한다”고 올 시즌을 평가했다. 올 하반기 고진영과 치열한 경쟁을 벌인 끝에 올해의 선수상, 다승왕 타이틀은 빼앗겼지만 세계랭킹 1위는 끝까지 지켜냈다. 그는 “세계 1위 타이틀은 오랜 시간 동안 훌륭한 플레이를 했다는 걸 증명해주는 것이기에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며 “루이스와 같은 훌륭한 미국 선수들과 내 이름이 함께 언급되는 것도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2017년 LPGA 투어에 데뷔해 매년 1승을 올린 코다가 올해 돌풍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코다는 올 상반기에만 메이저대회인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을 비롯해 3승을 올리며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올해의 터닝포인트로 지난 6월 US여자오픈을 꼽았다. 당시 상금랭킹과 평균타수에서 각각 3위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타던 그는 2라운드까지 11오버파를 치고 탈락했다.



“중요한 대회에서 커트 탈락하자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그 충격으로 제 플레이를 돌아보고 재정비하게 됐죠.”

코다의 절치부심은 곧바로 효과를 봤다. 직후 열린 마이어 LPGA 클래식과 KPMG 챔피언십에서 2주 연속 우승하며 세계랭킹 1위까지 밀고 올라갔다. 그는 이때를 “도쿄올림픽 금메달과 함께 올해 가장 짜릿했던 순간”이라고 꼽았다.

8월까지 독주를 이어간 코다는 하반기 고진영의 거센 추격을 받았다. 이들의 라이벌전은 LPGA 투어가 꼽은 올해 최고의 뉴스이기도 하다. 코다는 고진영에 대해 “약점 없이 모든 플레이를 잘하는 훌륭한 선수”라며 “진심으로 존경한다”고 말했다. “고진영은 티에서 그린까지 일관성 있는 플레이를 보여줍니다. 오랜 기간 놀라운 플레이를 해온 고진영과 함께 경쟁하고 경기할 수 있다는 것은 저에게 소중한 일입니다.”

코다 역시 비거리부터 아이언샷, 퍼팅까지 모든 샷을 완벽하게 구사한다. 특히 큰 실수도 이내 회복하는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나다. “저 역시 큰 실수를 하면 감정이 폭발하지만 다음 샷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노력해요. 특히 캐디가 평소의 루틴을 유지해 다음 샷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잘 이끌어 줍니다.”

한화큐셀 모자를 쓰고 필드를 누비는 코다는 한국 팬들에게도 친숙하다. 코다가 한화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은 LPGA 투어에 데뷔한 2017년. ‘유망주를 발굴해 함께 성장한다’는 골프단 운영 철학에 딱 맞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2019년까지 한화가 주최한 한화클래식에 참가하며 여러 번 한국을 찾았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떡볶이와 불고기를 꼽을 정도로 한식 마니아이기도 하다. 그는 “처음 한화큐셀의 제안을 받은 뒤 회사에 대해 알아보고 바로 함께하기로 결정했다”며 “좋은 회사였기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좋은 선수들과 함께 한화큐셀골프단에 속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설명했다.

코다 집안은 ‘스포츠 로열 패밀리’다. 언니 제시카는 LPGA 투어 통산 6승의 스타 선수다. 동생 세바스찬은 테니스 선수로, 올해 윔블던 4차전에 출전해 세계랭킹 50위 안에 들었다. 아버지 페트르는 1988년 호주 오픈에서 우승한 테니스 선수 출신이고, 어머니 레지나는 체코 테니스 국가대표로 1988 서울올림픽에 출전한 바 있다. 코다는 “선수 생활에서 가장 든든한 지원군은 가족”이라고 했다.

“우리 가족에겐 스포츠가 일상이었죠. 세계 최고의 자리에서 경쟁하는 상황을 알기에 서로에게 큰 의지가 됩니다. 서로의 경기력이나 시합에 대해 이야기하진 않아요. 가족으로서 최대한 서로 응원해주고 격려하죠.”

코다는 그 어느 때보다 화려했던 올해의 마무리를 아버지와 함께한다. 코다는 오는 19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리츠칼튼GC에서 열리는 PNC 챔피언십에 부녀팀으로 출전한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아버지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최대한 즐기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