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대를 나타낼 것으로 보이고, 근원물가 상승률은 2%에 근접한 수준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16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간담회에서 "최근 국내외 물가 흐름에선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요인이 늘어나고 그 영향도 점차 확산되면서 물가 오름세가 예상보다 장기화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내년에는 국제유가 등 공급측 요인의 영향이 올해보단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경기회복세가 이어지면서 수요측 물가상승압력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짚었다.
실제로 미국 중앙은행(Fed)를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과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더이상 인플레이션을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이 총재는 "국제유가 등 에너지가격 상승은 대다수 국가에서 소비자물가의 오름세 확대를 주도하고 있다"며 "당초 에너지가격 상승은 수급불균형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는 시각이 우세했지만, 최근에는 주요국간 갈등, 기상이변 등 예상치 못한 충격이 더해지면서 높은 에너지가격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공급병목 현상(supply chain bottlenecks)도 확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당초 자동차용 반도체 등 일부 중간재와 내구재에 국한됐지만, 이후 원자재와 물류 등 생산단계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예상보다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다"며 "더욱이 최근 오미크론 등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공급망 회복이 더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공급 측면에서 비롯된 일시적 요인들이 예상보다 장기화하는 가운데 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압력까지 더해지며 물가 오름세는 국내 각 부문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 총재는 "2%를 상회하는 높은 가격상승률을 나타내는 품목의 범위가 에너지, 농축산물 등 일부 품목에서 최근에는 내구재, 개인서비스, 주거비 등 많은 품목에까지 광범위하게 확대되고 있다"고 짚었다.
특히, 일시적 요인이나 특이 요인의 영향을 제외한 기조적 물가의 오름세도 높아지고 있다. 그는 "물가상승률이 매우 높거나 매우 낮은 품목을 제외한 '조정평균 소비자물가'나 정부정책의 영향을 제거한 '관리제외 근원물가'의 상승률을 보면 연초 1% 내외였지만, 최근에는 2%를 웃돌고 있다"고 했다.
추가로 "더욱이 2%를 큰 폭 상회하는 물가상승률이 이어지면서 일반인 기대인플레이션율도 상승하고 있다"며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불안해지면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 보듯이 임금과 물가의 상호작용을 통해 물가상승이 가속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기업의 경영전략 수정 조짐이 나타나면서 구조적인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기업들은 생산 및 유통 관리에 있어 재고를 최소화하는 기존의 저스트-인-타임(just-in-time) 방식에서 만일에 대비하는 저스트-인-케이스(just-in-case)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효율성(efficiency)보다는 복원력(resilience)을 더 중시하는 방향으로 경영전략을 수정하는 조짐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 총재는 "이러한 변화는 기업의 생산비용을 높여 구조적인 물가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저탄소?친환경 경제로의 전환 움직임은 원자재 가격 상승, 화석연료의 수급불균형 등을 유발하면서 장기적인 물가상승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최근 들어 물가상승의 속도가 빨라지고 그 범위도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상당 기간 높은 수준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높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면 가계의 실질 구매력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고은빛 한경닷컴 기자 silverligh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