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고위험' 감사직에 대한 경종

입력 2021-12-14 17:34
수정 2021-12-15 00:47
자본주의는 모든 행위의 자율적 기능을 중요시한다. 기업 내부의 자정 역할도 기업 내부 감시기구에 의해 수행되는 것에 예외가 없다. 물론, 이런 기능이 작동하지 않을 것에 대비해 법과 규정이 존재하며 범법에 상응하는 벌을 부과한다.

신(新)외부감사법은 기업의 회계 부정 금액의 20%를 회사에 대한 과징금으로, 또 회사 부과 과징금의 10%를 회사 관계자에게 부과할 수 있다. 회사 관계자에는 당연히 상근감사와 감사위원회의 감사위원도 포함된다. 회계부정을 저지른 최고경영자(CEO)나 최고재무책임자(CFO)에게 부과되던 해임권고나 6개월 직무정지가 이제는 상근감사나 감사위원에게도 해당된다. 수년 전 회계사기로 문제가 된 대우조선해양이 5조원 회계사기라고 하니, 법정 최고 금액 기준으로 개인에 대해 1000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됐을 수도 있다.

최근에는 상근감사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회계 부정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받는 일이 발생했고, 대우건설 사내·외 이사들에게 공정위에서 부과받은 과징금 일부를 개인적으로 부담하라고 법원이 판결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상근감사나 감사위원은 아무나 맡아서는 안 되며, 반드시 상법에서 요구하는 주의 성실·충실 의무를 다해 업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책임을 묻게 된다.

금전적인 벌로부터 이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임원책임보험 등에 가입한 회사들이 다수이기는 하지만 고의나 중과실의 경우엔 무용지물이다. 특히 고의는 아니더라도 과실인지 중과실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일부 기업은 정관에 사내·사외이사의 책임한도를 채택하고, 이를 초과하는 금액은 책임을 면제하는 제도를 운용한다. 하지만 이 또한 완전한 보호를 제공하지는 않으며 모든 기업이 면책제도를 채택한 것도 아니다. 물론, 이 같은 제도는 이사·감사위원들이 소극적인 의사결정을 수행하지 않도록 하는 순기능이 있다.

이처럼 신외감법은 감사위원회에 많은 권한을 부여해 중차대한 역할을 맡기는 동시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고 있다. 책임과 이에 따르는 의무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며 사외이사와 감사위원에게 요구되는 전문성과 독립성, 두 덕목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런 차원에서 SK의 이사회 중심 경영은 우리 기업 문화에 신선한 충격을 준다. 언론에 따르면 SK㈜ 이사회에 상정한 투자 안건이 1대 주주인 최태원 회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이사들의 찬성으로 의결되는 이변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우리나라 이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이사회가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이런 현상은 사외이사·감사위원에 대한 엄중한 책임과 무관하지 않다. 섣불리 최대주주의 의견을 밀어주다가 큰일을 당할 수 있다.

12월 결산법인 중 사외이사·감사위원 임기가 종료되는 기업들은 지금 후보를 찾고 있다. 후보자 본인들이 회계에 대해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면 감사위원을 고사해야 할 것이며, 본인들이 소명감을 갖고 시간을 투자해 문건을 검토하고, 회의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생각이 없다면 사외이사·감사위원이라는 역할은 ‘고위험’ 업무가 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코어비트의 판례는 사외이사·감사위원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1, 2심은 회사 업무에 별로 관여하지 않은 사외이사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동일한 사안이 완전히 반대로 해석되면서 대법원은 이사회 불참 등 경영활동을 소홀히 했다면 불성실한 사외이사도 분식회계에 책임이 있다고 판결을 내렸다.

투명한 경영활동과 관련해 감독·규제기관이 할 수 있는 일은 법이나 규제를 통해 시스템을 의무화하는 것이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업무 관계자들이 소명의식을 가지고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진행되지 않을 경우, 시장은 소송으로, 규제기관은 제재라는 수단으로 사외이사·감사위원을 재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