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입시 시즌이다. 학령인구 감소로 모든 고교 3학년 학생들이 다 대학을 온다고 해도 자리가 남는 시대인 만큼 입시의 의미는 과거와 달라졌다. 과거 대학 입시는 학생들을 ‘선별’하는 데 가장 관심을 뒀다. 우리 대학에 잘 맞지 않는 학생들을 우선적으로 선별해 제외하는 방법을 쓰기도 했다. 이 경우 필기시험이나 면접에서 작은 실수 하나만 해도 가차 없이 낙오자가 된다. 시험 또는 면접 당일 감기라도 걸렸거나, 시험 걱정으로 잠을 설친 친구는 영락없이 저조한 실력을 보이고 1차로 탈락할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베이비붐 세대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 교수에 비해 학생 수가 많으니 산더미 같은 리포트를 채점할 때 선풍기를 틀어놓고 멀리 날아가는 리포트는 점수를 낮게 주고, 두툼해서 멀리 날아가지 못한 리포트는 A를 줬다는 괴소문도 이런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리포트의 양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필사적으로 과제의 장수를 채우기에 바빴던, 요샛말로 ‘웃픈’ 상황도 비일비재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지금도 과제를 내면 경쟁적으로 ‘더 많이’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학생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런 리포트들 속에서 훌륭한 논문을 찾기 위해 교수들은 정성과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읽어보고, 길이와 관계없이 우수한 논문을 찾아 점수를 매긴다. 입시에서도 마찬가지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수많은 서류를 살피고, 면접을 통해 학생의 보이는 실력뿐만 아니라 그 안의 잠재력을 찾아낸다.
한번은 면접 중 한 학생이 너무 긴장을 해서 간단한 질문에도 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긴장으로 떨고 있다는 이유로 이 학생을 떨어뜨릴 것인가, 아니면 다시 한번 기회를 통해 면접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나는 후자를 택했다. 떨고 있는 학생에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다시 찬찬히 답해 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학생은 이내 심호흡을 한 뒤, 깊은 생각이 담긴 훌륭한 답변을 했고 결국 좋은 점수를 받았다. 실제로 그 학생은 우리 대학에 입학해서 졸업과 동시에 미국 아이비리그 로스쿨에 입학한 것으로 기억한다. 작은 실수를 해도 다시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곳,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미약하더라도 잠재력을 끌어내고자 하는 곳에서 사람은 더 빛을 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런 믿음이 사회에서도 통용되길 바란다. 너무 바빠서 혹은 귀찮아서,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일을 너무 쉽게 결정하지는 않는가? 상대방의 좋은 점을 최대한 찾으려고 하기보다 단 한 번의 인상이나 실수로 판단해 버리지는 않는가? 우리 사회가 모래 속에 숨은 진주를 찾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는 사회, 작은 실수를 눈감아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멋진 사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