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경영이란 환경, 사회 및 지배구조 등 투자자가 투자대상기업을 평가하는 비재무적 요소를 기업 경영에 반영하는 경영방식을 의미한다. 이러한 ESG 경영방식이 확산되면서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도 변하고 있다. 기업의 생존 원동력을 사회 구성원에 대한 배려에서 찾는 시각이 최근 확산되고 있고, 기업 영향력의 근원을 단순한 경제적 이슈를 넘어 초국가적이면서 비경제적인 요소까지 기업이 영향을 미치는 점에서 찾는 시각도 많다.
이처럼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화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기업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만 하는 여러 이슈들이 최근 출현했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디지털전환의 확산으로 인해 회원국 전체 일자리 중 약 45%가 사라지거나 업무 내용이 상당히 변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한 이런 과정에서 중간 일자리가 사라지는 일자리 양극화가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선진국을 중심으로 심각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고용 지속이 고령층의 복지 사각지대 해소에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 모든 이슈들이 기업의 적극적 대응이 필요한 이슈들이다. 게다가 세계 100대 기업의 총 매출이 14조5000억달러에 근접하면서 OECD 전체 회원국 정부 구매의 두 배에 가까울 정도로 기업의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에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ESG 경영을 기업의 사회적책임(CSR)처럼 호혜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기업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환경에서 ESG 경영의 빠른 확산을 위해 선진국을 중심으로 인권실사의 의무를 기업에 부과하는 등 ESG 경영을 의무화 하는 법제화 동향이 강화되고 있다. 인권 측면에서 ESG 법제화 동향을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기업이 준수해야 할 인권 목록을 법제화 하고 위반 시 제재를 가하는 방식은 복잡한 기업 인권 문제를 다루기에는 적절하지 않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인권실사의 의무를 기업에 부여하는 방식이 확산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금융산업의 투명성과 안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제정된 '도드-프랭크법(Dodd-Frank Act)'의 1502조는 아프리카 분쟁지역에서 자행되는 아동노동 착취, 여성 학대 등 인권문제를 근절시키기 위해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은 분쟁광물 사용 여부 및 원산지를 조사하고 공급망에 대한 실사를 수행하여 보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기업의 인권실사 범위를 해당 기업 자신에게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공급망 내 모든 협력사로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에서는 다국적 기업의 자회사 또는 협력업체가 해외 사업 시 인권침해나 환경 훼손과 같은 비윤리적 행위를 초래할 경우 법적 책임을 지우기 위해 ‘UN 이행원칙’을 기반으로 인권실사를 하도록 의무화하는 '실사의무법안(Duty of Vigilance Law)'이 2017년에 제정됐다. 네덜란드에서도 네덜란드 소비자들에게 상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회사들에게 자신의 공급망에서 아동 노동을 식별하고 방지해야 하는 의무를 부과하는 '아동노동실사법(Child Labor Due Diligence Act)'이 2019년 제정됐다.
최근 법제화 동향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인권실사의 범위가 공급망으로 확대되면서 동시에 다양한 형태의 제재까지 가해진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독일의 '공급망실사법(Act on Corporate Due Diligence in Supply Chains)'이다. 이 법은 기업에게 자신의 사업영역뿐만 아니라 직·간접 공급업체에서 ‘인권’ 및 인권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위험요소들을 관리해야 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또한 위반 시 위반 사항의 중대성 및 회사의 피해구제 노력 등을 고려해 매출액 기준에 따른 행정제재금을 부과할 수도 있다. EU도 기업 자신뿐 아니라 자신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자회사 및 협력업체 등에 ESG 실사 체계를 구축해야 하는 의무를 부여하기 위한 법안을 준비 중이다. 이 법은 EU 회사 뿐만 아니라 EU 회사와 협력관계에 있거나 EU에 상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해외 회사에게도 적용될 예정이며 기업에 민사적 손해배상의 책임을 부과하거나 벌금 및 각종 제재를 부과하는 후속 입법을 EU 회원국에 요구할 예정이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법제화 동향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 법무부는 '인권정책기본법'을 입법예고했다. 이 법은 인권경영의 확산을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기업의 인권침해 방지를 위한 제도를 마련할 의무를 부과하고, 기업에게는 경영활동에 의한 인권침해 피해자의 권리구제 수단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할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제 인권경영을 포함한 ESG 경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공급망 내 인권경영 확산을 위한 법제화 동향이 강화되면서 자체 공급망 내 다수의 기업을 가진 대기업 뿐만 아니라 대기업의 공급망에 속해 있거나 속하길 원하는 중소·중견업체에게도 ESG 경영은 필수가 됐다. 이제 반도체나 자동차 산업처럼 공급망 내 수많은 기업이 서로 연계되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산업에서는 ESG 경영은 필수를 넘어 기업의 생존과 지속 가능을 위해 적극적인 선제적 조치가 필요한 사안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의 법제화 동향을 감안하면, 인권경영 측면에서 앞으로 당장 실천에 옮겨야 할 ESG 중점 과제는 인권존중시스템 구축과 공급망 ESG 진단 및 개선이다. 인권헌장 제정을 통해 경영진의 의지를 명시적으로 밝히고 인권경영 시스템을 수립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또한 이런 시스템을 활용하여 인권 위험요소에 대한 자체적인 점검 및 평가를 진행해야 한다.
한편 평가를 통해 도출된 각종 인권경영 이행 현황을 적극적으로 공시할 필요도 있다. 대기업은 공급망 내 협력사들의 인권경영을 위해 설명회를 개최하거나 자가진단이 가능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자체 분석이나 대응이 어려운 중소·중견업체들은 동종업계의 ESG 우수 사례를 참조하여 평가항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자신이 취약한 부분을 우선 파악해야 한다. 다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무작정 우수 사례를 따라하는 것은 국내법과의 충돌을 야기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공급망 내 협력사 직원들의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할 경우 불법파견 이슈나 부당한 경영간섭 이슈가 발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지금은 법적·경제적 위험 요소를 감안한 인권경영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변양규 김·장 법률사무소 전문위원
※이 글은 한국경제신문 좋은일터연구소가 발행하는 '한경 CHO Insight'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