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 캄캄하다”는 기업 CEO들의 한탄이 올해도 쏟아진다. 코로나 위기가 개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교역질서와 공급망을 두 동강이 낸 미·중 갈등이 더욱 심화하고 있는 올 연말은 정말 예사롭지 않다. 실제로 국내 대표기업들이 ‘계획-실행-평가(plan-do-see)’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연구원 설문 조사에 따르면 국내 매출 상위 500대 기업(101개사 응답) 중 “내년 투자계획이 없다”거나 “계획 자체를 세우지 못했다”는 곳이 각각 8.9%와 40.6%로, 모두 49.5%에 달했다. 투자계획을 짠 곳(50.5%) 중 “투자를 올해보다 늘리겠다”는 기업은 31.4%, “올해 수준을 유지”는 62.7%로 나타났다. 전체 비중으로 보면 국내 기업의 약 15%만이 내년 투자를 더 늘리겠다고 답한 것이다.
기업들은 불투명한 세계경제 전망(31.8%), 공급망 재편에 따른 교역환경 악화(19.7%), 투자여력 부족(12.1%) 등을 이유로 들었다. 최대 리스크로는 52.9%가 ‘원자재 가격 상승’을 꼽았다. 국내 기업이 원자재 대란으로 올 들어 3분기까지 67조원에 이르는 손실을 봤다고 하니, 그 공포심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기업의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인 투자계획을 ‘미정’인 상태로 두면 경영 전반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손실 최소화에 급급하게 되고, 10년 뒤를 내다보는 과감한 연구개발과 투자 집행, 인재 육성은 언감생심이다. 디지털 전환 가속화, 공급망 재구축, 신산업 선도적 투자 등 과제를 풀기도 버겁다.
글로벌 경제는 40년 만의 인플레이션과 저(低)성장이 동시에 현실화할 위험이 커져 기업 차원의 대응이 쉽지 않다. 미국의 테이퍼링 조기 종료(내년 3월)와 금리인상 관측에다 중국의 부동산기업 헝다의 디폴트(채무불이행)로 인한 중국 성장률 하락도 심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벌써부터 내년 세계 성장률 전망이 속속 하향수정되고 있다. 올해 한국 수출이 6400억달러를 넘겨 역대 최대치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지만, 내년에도 이런 흐름이 이어질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 기업의 경영 환경은 글로벌 경쟁자들보다 열악하다. 달성 불가능한 탄소중립 목표 강제, 친(親)노조 정책 심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 온통 지뢰밭이다. 이런 점에서 여야 대선후보는 ‘성장’에 중점을 두겠다고 말만 할 게 아니다. 기업들의 애로를 경청하기 위해 귀를 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캄캄한 내년’을 버티지 못하는 한계기업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