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자산운용사들이 새로운 리더를 중심으로 조직 정비에 나섰다. 최근 급팽창 중인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을 염두에 둔 결정으로 풀이된다. 경영진 쇄신을 통해 해외 대비 아직 설익은 ETF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향후 ETF 시장은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 중심으로 경쟁을 예고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자산운용은 최근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서 서봉균 삼성증권 세일즈앤트레이딩(S&T)부문장을 신임 대표 후보로 추천했다. 삼성생명 자산운용본부장 출신 인물을 삼성자산운용 사장 자리에 앉혀온 기존의 관행을 뒤집은 것이어서 내부에선 파격으로 받아들여진다.
서 대표 내정자는 골드만삭스 한국대표를 지내는 등 금융투자업계에서 30여년간 근무한 운용 전문가다. 심종극 삼성자산운용 대표는 임기가 1년 남은 상태지만 세대 교체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용퇴를 결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회사는 이번 수장 교체가 ETF 시장 지위 강화와 글로벌 운용 인프라 확장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도 6년간 이어온 김미섭·서유석 각자 대표 체제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투톱을 맞았다. 신임 대표 자리에는 최창훈 부회장과 이병성 부사장이 올랐다. 아울러 1977년생인 김남기 ETF운용 부문 대표와 1978년생 신동철 해외부동산 부문 대표 등 40대 부문 대표를 여럿 기용하면서 젊은 피를 수혈했다.
한국투자신탁운용 역시 국내 첫 ETF를 선보여 '업계 산 증인'으로 불리는 배재규 삼성자산운용 부사장을 새 사장으로 내정했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이 사장급 인사를 외부에서 영입한 것 역시 드문 사례로 꼽힌다.
올해 주요 자산운용사들의 인사에 변화가 두드러진 것은 ETF 투자 열풍에서 확실한 승기를 잡기 위한 업계 의지와 맞닿아 있다.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로 간접투자에 대한 투자자들 신뢰가 떨어진 데다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으로 개인 대상 펀드 판매가 위축되면서 업계는 일찌감치 ETF 시장을 새 먹거리로 낙점했다.
국내 ETF 시장은 최근 수년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0일 기준 자산운용사 총 18곳이 ETF 종목 529개를 발행했다. ETF에 투자된 총 금액을 뜻하는 순자산총액이 70조5596억원에 달한다. 2016년 25조원을 겨우 넘겼던 시장 규모가 불과 5년 만에 3배 가까이 급성장한 것이다. 52조원으로 집계된 작년과 비교해도 35% 넘게 불어났다.
시장 트렌드가 바뀌면서 삼성자산운용의 독점적 지위도 흔들리는 모습이다. 2002년 10월 코스피200지수를 추종하는 국내 첫 ETF를 상장했던 삼성자산운용은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만큼 한때는 전체 시장의 절반 이상을 휘어잡았다. 하지만 후발주자들의 잇단 참여로 점유율은 줄고 있다. 이달 10일 기준 43%(순자산총액 30조3382억원)를 기록하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약 35%(순자산총액 24조4110억원)의 점유율로 그 뒤를 바짝 뒤쫓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산운용사들의 ETF 경쟁이 거세지면서 향후 시장 구도도 재편될 것이란 분석이다.
주윤신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코로나19 사태 직전까지만 해도 지수형 ETF가 시장을 이끌었기 때문에 각사 상품들이 서로 비슷했다. 하지만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2차전지, 메타버스 등 특정 산업에 집중 투자하는 테마형 ETF들이 출시되면서 상품 구성이 다양해졌다"라며 "중형급 운용사들도 혁신적인 테마형·액티브 ETF를 출시해 시장 내 점유율을 증가시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 연구위원은 "다양한 테마형 ETF 수요 증가, 연금계좌를 활용한 ETF 투자 증가 등으로 국내 ETF 시장은 장기투자 수단으로서 향후에도 높은 성장세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