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미국은 조급했다. 러시아에 맞서 우주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었지만 한 발짝 뒤에서 쫓아가기 바빴다. 러시아가 유리 가가린을 태운 유인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동안 미국의 우주선은 대기권도 뚫지 못하고 불덩이가 됐다. 컴퓨터도 없던 시절. 미국 항공우주국(NASA) 직원들은 우주선을 쏘아 올리기 위해 손으로 수많은 계산을 해야 했다. 대다수를 차지하는 백인 남성 직원들이 우주선의 궤적을 그리고 계산을 하면 백인과 흑인 여성들이 계산을 복기했다.
영화 ‘히든피겨스’는 사람이 우주에 가는 것보다 흑인과 백인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받는 게 더 어려워보이던 시절, NASA에서 계산을 담당하던 흑인 여성 세 명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능력 밖의 이유로 차별받던 주인공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능력을 펼치게 되는 게 핵심 줄거리다. 1958년부터 1963년까지 진행된 나사의 유인 우주선 프로젝트인 머큐리 계획에 크게 기여한 사람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차이를 차별하던 시대영화는 소수자가 노동시장에서 받는 직간접적 차별을 그렸다. 세 주인공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버스 뒤칸에 앉아야 하고, 사무실 커피포트조차 백인과 같이 쓸 수 없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릎까지 내려오는 치마와 굽 높은 구두를 신어야 하고 정부 관료가 참석한 주요 회의에는 참석할 수 없다. 주인공 중 한 명인 캐서린이 건물 밖에 있는 유색인종 여자 화장실을 쓰려고 빗속을 달리는 장면은 흑인 여성이 시달렸던 겹겹의 차별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세 주인공에 대한 차별은 직접적일 때도 있지만 간접적으로도 이어졌다. 간접 차별은 인종 및 성별을 기준으로 하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특정 집단에 불이익을 야기하는 차별을 의미한다. 엔지니어 팀장이 전직을 권할 정도로 자질이 있는 메리는 엔지니어를 꿈꾸지 못한다. NASA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려면 버지니아대와 햄프턴고 학위가 필요해서다. 언뜻 성별, 인종과는 무관하게 보이는 공정한 학력 조건이지만 알고 보면 두 곳 모두 흑인의 입학을 받아준 적이 없는 학교다. 메리는 햄프턴고에 들어가기 위해 법원에 청원을 내고, 이 학교 최초의 흑인 여학생이 된다. 저임금·저숙련 직종에 몰린 흑인 여성
노동시장에서 인종과 성에 따른 차별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고용 인원의 차이가 대표적이다. 영화 속 NASA 우주임무본부 사무실엔 수십 명의 직원이 일하지만 여성은 둘뿐이다. 본부장 업무를 보조하는 백인 비서와 계산실에서 뛰어난 수학능력을 인정받아 임시 발령을 받은 주인공 캐서린이 전부다.
집단에 따라 맡는 일이 다른 ‘직종분리 현상’도 드러난다. 직종분리는 중요도가 낮고 미래가 밝지 않은 직업에 소수자가 몰리는 현상을 뜻한다. 영화 속 NASA에서 전체 직원 가운데 흑인 여성의 비중은 낮지만, 계산을 검토하는 부서만큼은 흑인 여성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계산실은 기술 발전에 따라 사라질 가능성이 높은 단순업무직이다. 영화 중반 최초의 IBM 컴퓨터가 NASA에 도입되면서 계산실 직원들은 단체로 해고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직종 분리현상은 ‘붐빔현상’으로 이어진다. 직업의 기회가 제한된 소수자들이 특정 직업군에 몰리면서 실업률은 올라가고 평균임금은 떨어지는 현상이다. 경제학자들은 성별 임금 격차, 인종 간 임금 격차를 설명할 때 붐빔현상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2018년 기준 미국 여성(평균)은 미국 남성 임금의 83% 수준만 받는다. 영화의 배경인 1960~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 비중은 60%대로 떨어진다.
영화 속 캐서린의 한마디는 그가 노동시장에서 겪은 차별과 임금 격차를 집약해서 드러낸다. “그거 알고는 있었나요? 저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 하루 800m를 걸어야 해요. 무릎 밑까지 오는 치마에 힐도 신어야 하고, 그리고 진주목걸이라뇨? 전 진주목걸이가 없어요. 흑인한테는 진주를 살 만큼의 급여를 주지 않으니까요.”
나수지 한국경제신문 기자 NIE 포인트1. 노동시장에서 인종과 성에 대한 차별이 남아있는지 알아보고, 이를 해소할 방법을 생각해보자.
2. 직업분리현상으로 발생하는 경제적 문제점을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