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1990년 '국민 여동생'으로 불리던 올림픽 사격 금메달리스트 이정은(김성령). 위장 전입, 전과 기록을 다 지우고 나니 논란으로 잘린 문화체육부 장관직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그뿐이었다. 비록 국회의원 시절 정치 신인으로 큰 활약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서사까지 탄탄한 이정은이기에 문제없이 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것. 참고로 전직 장관은 비대면 회의에서 카메라가 꺼진 줄 알고 음란한 행동을 하다 쫓겨났다.
운동만 할 줄 알았지, 정치는 모르는 머지리. 극 초반 모두가 이정은을 그렇게 생각했다. 매 순간 자신에게 유리한 대로 얼굴을 바꾸는 정치인들뿐 아니라 장관보다 오랫동안 문체부에서 일해왔던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얼굴마담'인 줄 알았던 이정은은 올림픽에서 활약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승부사였다. 문체부 성범죄 피해자 지원 사업 출범식에서 지지 발언을 해줄 피해 여성에게 무례한 발언을 했던 부하 직원을 해고하고,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며 단숨에 상황을 역전시켰다. 뿐만 아니라 남편인 정치평론가 김상남(백현진)의 갑작스러운 납치 사건에 대응하며 동분서주하는 모습에 국민들은 오히려 열광했다. 일주일 만에 이정은은 존재감이 미비했던 장관에서 대선 '잠룡'으로 떠올랐다. 현실을 담은 블랙코미디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는 남북 정치 이벤트부터 각 정당들의 갈등, 성희롱, 종교의 정치화, 가짜뉴스 생성과 불법 촬영 등 우리 사회 내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정은이 '핫'해지니 청와대에서는 그를 남북 회담의 카드로 그를 내세웠다. 이정은의 유명세에 그를 정치권으로 인도했지만 감정의 골이 깊은 또 다른 여성 의원 차정원(배해선)이 이를 갈고, 정치적인 발언을 일삼으며 숨 쉬듯 성희롱을 하는 팽목사(권태원)와 같은 인물들과 사건들은 우리 사회 누군가와 특정 시점이 겹쳐 보이기도 한다.
이정은의 지지율을 보여주는 그래프에서도 상위권 정치인들의 이름도 대선 경선을 펼치고 있는, 혹은 펼쳤던 사람들의 이름을 교묘하게 바꿨다. 진보 정치평론가를 표방하지만 실상 '이정은의 남편'이 최고 스펙인 김상남을 두고 라디오 스태프들은 "유시민이 되고 싶은 잔잔바리"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정은을 칭하며 '90년대 김연아'라고 하거나 "한남과 결혼했다"는 말도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대사다. '한남'은 한국 남성'을 비하하는 의미로 쓰이는 단어라는 점에서 OTT(온라인 미디어 플랫폼)의 강점을 살린 거침없는 표현인 셈이다.
젠더 이슈 역시 물러서지 않는다. 특히 성범죄 피해자의 소셜미디어를 보면서 "왜 이렇게 밝고, 몸이 좋냐"면서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2차 가해를 하면서도, 문제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공무원을 비롯해 떠나간 여자친구를 붙잡겠다면서 몰래 위치추적 앱을 설치하고, 도청을 하는 범죄 행위도 등장한다.
또한 김상남이 사라진 후 마지막으로 연락했던 여성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노출이 심한 사진으로 쉽게 성을 파는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고정 관념도 블랙 코미디로 깨 버린다. 이렇게 일을 벌여도 되나요?
김상남이 실종됐고, 그를 납치한 사람은 "김상남의 실체를 알려주겠다"면서 이정은에게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진을 발송하며 "사퇴하라"고 주장한다. 남편의 실종, 사퇴 압박을 정면 돌파하기로 마음 먹은 이정은은 "제 남편이 실종됐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긴장감은 고조된다.
이정은의 상황에 긴박감을 더하는 이들은 가짜뉴스를 만들어내는 기자들과 유튜버들이다. 그들은 보이는 대로 상황을 해석하고, 믿고 싶은 대로 콘텐츠를 만들며 살포한다. 자신의 기대와 다르게 상황이 진행되면 뜻대로 결과를 만들기 위해 조작도 서슴지 않는다.
이들만큼은 아니지만 이정은의 '식구'라 할 수 있는 문체부 직원들도 자신들끼리 판단하고, 상황을 왜곡한다. 김상남이 돌아온 후에도 그들끼리의 추측은 계속된다.
빠른 전개, 현실을 옮겨 놓은 듯한 풍자로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는 단숨에 입소문을 탔다. 적나라한 표현으로 내부적으로는 각종 논란 상황을 대비했지만, 시청자들은 콘텐츠 자체를 블랙 코미디로 즐겼다. 오픈 첫날 신규 시청자 유입 및 시청 시간 1위의 쾌거를 달성하는가 하면, 오픈 직후 꾸준히 전체 시청 시간 상위권을 유지하며 신규 유료 가입자 견인을 주도했다는 평이다.
웨이브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공개일 2021년 11월 12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