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이름까지 바꿔 '뉴삼성 DNA' 심는다

입력 2021-12-10 17:31
수정 2021-12-20 16:39
삼성전자가 CE(생활가전)와 IM(IT·모바일) 부문을 세트 부문으로 통합한 데 이어 사업부 이름에도 손을 댔다. 20년 된 무선사업부 명칭을 ‘MX(Mobile Experience)사업부’로 바꿨다. 삼성전자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는 삼성경제연구소도 이달 말부터 ‘삼성글로벌리서치’로 사명을 변경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강조하고 있는 ‘뉴 삼성’의 지향점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편제와 명칭을 바꾸는 방법으로 해당 조직이 해야 할 임무를 명확히 강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연이은 삼성전자의 파격
삼성전자는 10일 MX사업부 이름에 ‘경험’이란 단어를 넣은 것은 ‘소비자’와 ‘서비스’에 방점을 두겠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단순히 기기 하나를 내놓고 끝나는 게 아니라 고객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경험을 안겨주는 데 힘쓰겠다는 얘기다. 제품 개발에서 소비자 반응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노태문 사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가 기기가 아니라 경험을 중시하는 조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라며 “사업부 명칭 변경을 통해 업의 본질을 바꿔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셈”이라고 했다.

올해 선보인 3세대 폴더블폰 사업 전략을 보면 삼성전자의 지향점을 짐작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8월 폴더블폰 신제품 ‘갤럭시Z플립3’를 출시한 이후 매달 한 번꼴로 다양한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협업) 제품을 선보였다. 10월엔 고객이 플립3의 앞면, 뒷면 등 색상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갤럭시Z플립3 비스포크 에디션’을 내놓기도 했다. 다양하고 복잡한 소비자의 요구를 반영하기 위한 조치들이다.

사업부 이름 변경을 계기로 삼성전자가 메타버스 사업을 본격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메타버스가 세계적인 산업 트렌드로 떠오른 데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게 새로운 경험의 지평을 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다. 세트 부문 먹거리는 ‘업그레이드 IoT’앞서 발표한 CE와 IM 부문의 융합이 비즈니스를 어떻게 바꿀지도 관심사다. 융합 조직의 힘이 처음으로 드러나는 무대는 내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IT·가전전시회인 CES 2022가 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세트 부문 통합에 발맞춰 생활가전과 모바일을 하나로 융합한 제품과 서비스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스마트폰으로 냉장고나 세탁기를 켜고 끄는 1차원적인 IoT(사물인터넷)에서 한 발 나아가 소비자들의 일상 속 경험을 한 차원 끌어올릴 수 있는 대안들을 내놓는 것이 목표다. 스마트폰으로 밀키트에 찍혀 있는 바코드를 찍고 식재료를 오븐에 넣으면 레스토랑 수준의 요리를 완성하는 ‘큐커’와 같은 혁신 제품들이 더 늘어난다는 의미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의 이 같은 변화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미국 골드만삭스는 “삼성 생태계를 강화하고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의미있는 변화”라며 “미래 성장 기회를 찾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고 평가했다.

삼성이 사업구조가 복잡한 기업이 시장에서 저평가를 받는 ‘복합기업 디스카운트’를 의식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미국의 대표적 복합기업인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주가가 51% 급락했다. 반면 산업용 의료기기 회사인 다나허의 주가는 273% 뛰었다. 비즈니스 모델이 무엇인지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기업에 투자가 집중됐다는 얘기다. 매출이 거의 없는 자동차 스타트업 리비안이 지난달 상장한 직후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 시총을 넘은 것도 이 같은 트렌드를 뒷받침한다.

사업 구조를 직관적으로 바꾸는 방법이 사업부를 합치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연관성이 크지 않은 사업은 기업분할을 통해 독립시키는 쪽이 유리하다. 지난달 일본 도시바가 인프라서비스와 디바이스, 도시바 반도체 등으로 조직을 나눈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같은 달 미국의 GE와 존슨앤드존슨(J&J)도 기업을 여러 개로 분할했다.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기업들은 각 사업부가 서로 시너지가 나는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며 “코로나19로 인해 어디서 어떤 리스크가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 왔기에 조직을 ‘린(lean·날렵)’하게 만드는 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수빈/서민준/송형석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