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이 옛날 병이라고? 아직도 발병률 OECD 1위, 사망률은 3위 [이선아 기자의 생생헬스]

입력 2021-12-10 17:08
수정 2021-12-20 16:44
30년 전만 해도 국내에서 당뇨병보다 더 많은 사망자를 낸 질환이 있다. 바로 ‘결핵’이다. 공기를 통해 호흡기로 전염되는 결핵은 1990년대엔 암·뇌혈관질환·심장질환 등에 이어 국내 사망 원인 7위였다. 그러다 위생·영양상태가 개선되면서 국내 결핵 발병률·치명률은 지난 30년간 꾸준히 감소했다. 결핵을 ‘옛날 병’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다.

하지만 결핵은 여전히 국가가 관리하는 법정감염병 중 사망자가 가장 많은 ‘현재진행형’인 병이다. 결핵균이 폐를 비롯해 온몸 곳곳으로 퍼지면 만성적인 호흡곤란은 물론 복통·궤양 등을 일으킬 수 있다. 결핵은 어떤 병인지, 증상은 어떤지, 어떻게 치료하고 예방해야 하는지 알아봤다. ○결핵 환자 1명이 30명 감염
결핵은 공기를 통해 감염되는 호흡기 감염병이다. 폐결핵 환자의 비말(침방울) 등에 있는 결핵균이 기침, 재채기를 통해 공기 중에 나와 떠돌다가 주변 사람을 감염시킨다. 특히 침방울은 공기 중으로 나오면 수분이 줄어들면서 날아다니기 쉬워진다. 감염 범위가 꽤 넓다는 의미다. 결핵환자 1명이 100명과 접촉하면 약 30명이 결핵균에 감염된다는 보고도 있다.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규폐증(폐에 규산 등 먼지가 쌓여 생기는 만성질환), 만성 신부전, 당뇨, 영양실조 및 저체중 등이 있는 환자는 결핵에 더 취약하다.

결핵균이 몸 안에 들어온다고 해서 증상이 곧바로 나타나는 건 아니다. 결핵 환자 대부분은 아무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잠복 결핵’이다. 그러다 나이가 들거나 면역력이 약해지면 증상이 생긴다. 결핵균이 어디에 갔는지에 따라 증상은 다르다. 가장 흔한 건 ‘폐결핵’이다. 결핵균은 산소가 많은 곳으로 향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폐결핵에 걸리면 2주 이상 기침을 하거나 가래가 섞여 나온다. 발열, 전신 무력감, 체중 감소 등도 함께 나타난다. 입맛이 없어지고 소화가 잘 안 되며, 집중력이 떨어진다. 병이 상당히 진행되면 가래에 피가 섞여 나오는 ‘혈담’, 피를 토하는 ‘객혈’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폐가 손상될 정도로 나빠지면 호흡곤란이 생기고, 흉막·심막 등을 침범할 경우엔 흉통이 동반된다.

결핵은 폐 이외에 우리 몸 어느 곳이든 침범할 수 있다. 만약 겨드랑이·목 등에 퍼져 있는 림프절이 결핵균에 감염되면 발열·무력감 등 전신 증상과 함께 림프절이 부어오르면서 통증과 압박감을 느낀다. 척추 결핵이면 허리에 통증이 생기고, 결핵성 뇌막염이면 두통·구토 등 증상이 나타난다. 결핵균이 위장관으로 가면 복통, 설사, 장 내 궤양 등을 일으킨다. ○결핵 발병률, OECD 국가 1위지난해 발생한 결핵 환자는 1만9933명, 이 중 사망자는 1356명이다. 2012년 사망자 2466명을 기록한 후 꾸준히 줄긴 했지만, 여전히 국가가 관리하는 감염병 중에서는 사망자가 가장 많다. 결핵과 함께 2급 감염병에 속해 있는 카바페넴내성 장내세균속 균종(CRE·226명), 폐렴구균(68명)도 결핵 사망자 수를 크게 밑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922명)과 비교해도 1.5배 많다.

세계적으로도 결핵 발생률과 사망률이 높은 편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의 결핵 발생률(인구 10만 명당 49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국가 중 가장 높았다. 사망률(인구 10만 명당 3.8명) 역시 리투아니아·콜롬비아에 이어 세 번째였다.

결핵 사망자 중 대부분은 70세 이상 고령층이었다. 지난해 결핵 사망자 1356명 중 1048명(77.3%)이 70세 이상이었다. △60대 139명 △50대 98명 △40대 50명 △30대 15명 △20대 5명 등 고령층일수록 사망자 수도 많았다. 인구 10만 명당 사망률 역시 60세 이하까지는 한 자릿수였지만 70세 이상은 19.1%로 껑충 뛰었다. ○가족 감염 위험…가래 이용해 검사결핵은 대부분 증상을 보이지 않고 숨어 있어 위험하다. 갑자기 면역력이 떨어져서 결핵이 발병하면 짧은 시간 안에 주변 사람에게 퍼뜨리기 때문이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결핵 환자와 장시간 동일 공간에서 생활하는 가족 등 동거인이 특히 감염 위험이 높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코로나19 유행으로 결핵 관리가 미흡해지면서 향후 5년간 결핵 발생 및 사망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는 전망을 내놨다.

그만큼 빠른 진단검사가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결핵균은 가래(객담검사)를 통해 검출할 수 있다. 슬라이드에 가래를 얇게 펴 발라 결핵균만 선택적으로 염색하는 ‘도말검사’가 대표적이다. 도말검사는 검사 시간이 짧아 보통 하루 안에 결과가 나온다. 가래 안에 균을 2~8주간 증식시켜야 하는 ‘배양검사’보다 간단하다. 하지만 검체 채취 시간에 따라 민감도가 떨어질 수 있고, 일단 결핵이 발병한 후에야 검사가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

잠복결핵인 경우엔 투베르쿨린 피부반응 검사를 할 수 있다. 결핵균 배양액을 끓이고 남은 액체인 투베르쿨린을 주사를 통해 팔 안쪽 피부에 넣으면 주사 부위가 단단해진다. 이 부위가 얼마나 넓은지에 따라 잠복결핵인지 알 수 있다. 이 밖에 혈액검사로 인터페론 감마분비 수치를 측정해 잠복결핵을 진단할 수 있다. ○“백신 맞았어도 증상 생기면 진단해야”결핵에 걸리면 항결핵제를 통해 치료할 수 있다. 결핵약을 복용하면 2주 만에 기침, 발열, 무력감 등 증상은 사라진다. 결핵약은 흡수가 중요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식전 30분 모든 약을 한꺼번에 복용할 것을 권장한다. 중간에 약물 이상반응이 생기면 복용을 중단하는 게 아니라 다른 약으로 바꿔야 치료 효과가 높다. 일반적으로 결핵약을 6개월 이상 복용한 뒤 객담 도말검사를 다시 시행해 결핵균이 더 이상 검출되지 않으면 완치됐다고 본다.

결핵을 예방하려면 BCG 백신을 맞으면 된다. 결핵균의 독성을 완화해서 만든 BCG 백신을 맞으면 결핵 발병률이 5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다. 신생아는 출생 후 4주 안에 BCG 예방접종이 필수다. 다만 신생아 때 BCG 백신을 맞았더라도 결핵이 100% 예방되는 건 아니다. 백신을 맞은 후 10년째부터는 면역력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BCG 백신을 맞았더라도 결핵을 평생 예방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의심 증상이 발현되면 바로 검진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