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에 상장한 중국 기업들의 ‘먹튀 논란’이 또다시 불붙고 있다. 중국계 코스닥 상장사 GRT가 공모가의 4분의 1 수준에 상장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게 계기가 됐다. GRT가 상폐에 성공하면 국내 증시를 떠나는 14번째 중국 기업이 된다.
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GRT는 지난달 29일 주식 공개매수에 착수했다. 최대주주인 중국인 주영남 대표측이 보유하지 않은 지분 36.37%가 대상이다. 공개매수는 내년 1월 26일까지 진행된다. 목적은 자발적 상장폐지다.
공개매수 가격은 주당 1237원이다. 작년 10월 거래정지 전 종가인 951원에 30%의 할증을 적용했다. GRT는 작년 10월 2019년 감사보고서에서 감사의견 ‘비적정’을 받으며 거래가 정지됐고, 지난 3일 거래가 재개됐다.
투자자들은 ‘먹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2016년 상장 당시 공모가 5000원에 844억원을 조달했는데, 공개매수가가 공모가의 4분의 1 수준이기 때문이다. GRT가 공개매수에 성공하면 한국 증시에서 약 600억원의 차익을 남기게 된다. 이에 대해 GRT는 “경영활동의 유연성, 의사결정의 신속함을 확보하고자 자발적 상장폐지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소액주주들은 공개매수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최대주주측이 공개매수를 발표하면서 주가 하락을 자극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 증시를 떠나려는 기업을 투자자들은 기피할 유인이 크기 때문이다. 6일 GRT는 6.71% 내린 1320원에 거래를 마쳤다.
중국 기업이 국내에서 상폐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6월 에스앤씨엔진그룹은 코스닥에서 퇴출됐다. 사유는 사업보고서 미제출이다. 소액주주들은 고의 상폐를 의심하고 있다. 사업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아 퇴출되는 사례는 유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증시에 상폐된 외국기업 15개중 13개가 중국기업이다. GRT가 상폐에 성공하면 14번째 기업이 된다. 증권업계는 중국 기업의 상폐로 인한 투자자 손실액이 38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상폐되지 않아도 피해가 끊이질 않는다. 더 킹오브 파이터즈, 메탈슬러그 등 오락실 게임으로 유명한 코스닥 상장사 SNK는 공모자금으로 외국인 직원들끼리 ‘스톡옵션 파티’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2019년 5월 코스닥 상장직후 SNK는 52만8203주의 자사주를 취득했다. 1년 후 해당 자사주(52만8200주)는 고스란히 중국과 일본인 임직원 31명에게 스톡옵션으로 지급됐다. 행사가격은 주당 0.1원, 당시 SNK의 주가는 1만2900원이었다.
작년말 임직원들은 스톡옵션을 전량 행사해 7억8000만원~17억5000만원의 시세차익을 얻었다. 상장 당시 SNK의 최대주주는 중국인이 지분 100%를 보유한 법인이었다. 스톡옵션 행사후 중국인 최대주주는 SNK를 사우디아라비아 기업에 매각했다.
‘차이나 리스크’가 커지면서 중국 주식들은 대부분 동전주로 전락했다. 이스트아시아홀딩스는 공모가가 5000원인데 6일 종가 기준 156원까지 급락했다. 3200원에 공모한 로스웰도 261원에 마감했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