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담도암으로 투병 중인 윤성근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의 기고 글 등을 묶어 발간한 《법치주의를 향한 불꽃》(사진)의 초판 인쇄본 5000권이 출간 한 달도 되지 않아 모두 판매됐다. 책을 묶어낸 것은 윤 부장판사의 사법연수원 동기인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다. 그는 힘겹게 병마와 싸우고 있는 윤 부장판사를 위해 48시간 만에 책을 발간했다. 지난 5일 한국경제신문은 강 부장판사와 만나 발간에 대한 뒷이야기를 들었다.
강 부장판사는 “올봄 윤 부장판사에게 기고문을 엮어 책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며 “그런데 지난 11월 아들 결혼식에서 휠체어를 타고, 말도 힘들어하는 윤 부장판사 모습을 보면서 최대한 빨리 약속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해 실행에 옮긴 것”이라고 말했다.
강 부장판사는 윤 부장판사의 글에 대해 “법치주의에 대해 간과해서는 안 되는 원칙과 함께 소수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고 평가했다.
윤 부장판사는 한 기고문에서 “재판은 그 사람의 인격이나 그 사람이 살아온 삶에 대한 가치 평가가 아니다”며 판사가 도덕적 우월성에 빠져 재판 당사자를 다그치거나 해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윤 부장판사는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했던 옥시가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낸 가습기 살균제 허위광고 시정명령 취소 소송에서 “옥시가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인체에 안전하다고 표시했다”며 당시 가습기 살균제 유해성을 대중에게 알린 판사이기도 하다.
출판업계에선 이번 책이 ‘48시간의 기적’을 이뤘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강 부장판사가 책을 만들기 시작한 뒤 실제로 전자책으로 출간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48시간이었다. 강 부장판사는 “책 판매 비용 전액을 윤 부장판사 치료비로 쓰기 위해 잠까지 줄이면서 서둘렀다”며 “원고를 완성할 시간도 없어 100쪽이 끝나면 바로 디자인 회사에 넘기며 책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례 없는 속도전은 ‘책 공장 공장장’이란 별명을 가진 강 부장판사가 주도했다. 강 부장판사는 법원도서관의 조사심의관과 원장을 지낸 인물로, '밤나무 검사의 음악편지'라는 책을 엮어내기도 했다.
전자책은 지난달 17일 출간됐다. 초판 인쇄에 들어간 지 2주 만에 5000권 판매가 완료됐다.
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