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물은 우물과 같다. 우물은 퍼서 쓸수록 채워지고, 이용하지 않으면 말라버리고 만다. 비단옷을 입지 않으니 나라 안에 비단 짜는 사람이 없어지고, 이 때문에 여공(女工)이 없어진다. 비뚤어진 그릇을 탓하지 않으니 일에 기교가 없고, 나라에 공장(工匠)과 도야(陶冶)가 없어지고, 또한 일에 관한 기술과 재주가 없어질 것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박제가(그림) 저서 《북학의》의 내용입니다. 당시 조선은 성리학을 국가 통치 이념으로 삼아 사농공상(士農工商) 중 상업을 홀대하여 생산 활동이 미약하였죠. 또한 절약을 매우 중시하여 소비도 활발하지 못하였습니다. 박제가는 조선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지적한 것이었죠. 박제가의 우물론소비의 중요성을 외친 박제가의 주장을 듣다 보면 경제학자 중 누가 떠오르나요? 바로 1929년 시작된 미국의 대공황 시기 ‘유효수요이론’으로 소비의 중요성을 언급한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입니다. 당시는 생산 기술 발달로 제품이 과잉 생산되는 시기였죠. 그런데 미국에서 주가가 폭락하며 대공황이 시작되자 생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소비가 침체하였습니다. 이때 케인스는 정부가 재정정책을 시행하여 유효수요를 창출하자고 주장하였죠.
하지만 박제가가 살던 조선 후기의 상황은 약간 다릅니다. 케인스의 시대처럼 생산이 풍부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비가 매우 활발한 나라가 아니었죠. 당시 조선은 정말 필요한 소비활동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나라였습니다. 과도한 근검절약이 조선의 경제를 더욱 침체시켰죠. 사치한 것을 죄악시하여 관련 상품의 소비도 활발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사치품은 그 시기 기술이 집약된 것이어서 관련한 선진 기술을 수용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죠.
박제가가 언급한 비단과 그릇 이야기는 소비하지 않으니 이를 생산할 인력이 없고, 그래서 관련한 기술은 점점 퇴보한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죠. 경제의 선순환을 위해서는 적절한 소비가 있어야 생산도 증가하고 관련 기술도 발달한다는 것이 박제가의 생각이었습니다. 절약의 역설박제가의 우물론에는 ‘절약의 역설’이 있습니다. 절약의 역설은 개인이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면 개인은 부유해지지만, 모든 사람이 저축하면 총수요가 감소해 사회 전체의 부가 오히려 줄어든다는 의미입니다. 케인스가 유효수요이론과 함께 언급했죠. 소비를 미덕으로 보았습니다. 박제가의 우물론은 현재의 한국에도 적용할 수 있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한 자릿수였던 가계 저축률이 작년엔 10%를 넘기면서 소비가 위축되었고 경기가 침체하였죠.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3분기 1인 이상 가구의 평균 소비 성향은 67.4%로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06년 1분기 이후 최저치라고 합니다. 생산과 소비는 경제활동의 중요한 요소죠. 이 중 침체된 소비심리를 살리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것도 중요해진 시점입니다.
정영동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