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갈등에 표류하는 '수소法'…기업·생태계 고사 위기

입력 2021-12-02 17:17
수정 2021-12-03 00:58
‘청정수소 발전의무화제도(CHPS)’ 도입을 골자로 한 수소법 개정안이 당정 갈등으로 표류하고 있다. 일부 여당 의원은 이 개정안이 무늬만 친환경이라고 비판하며 법안 처리에 소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입법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정부 로드맵을 믿고 관련 투자에 나섰던 회사들이 자금난에 몰리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지난달 발전사들이 일정 비율 이상의 수소발전을 의무적으로 구매하도록 하는 ‘CHPS’ 도입을 골자로 한 수소법 개정안의 통과를 보류했다. 개정안은 수소를 기존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RPS)’에서 분리해 별도의 의무구매 대상으로 삼은 게 핵심이다. 청정수소 범주에는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생산한 그린수소와 부생수소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한 블루수소를 포함했다. 화석연료와 천연가스를 이용해 만든 그레이수소도 일단 의무구매 대상으로 정했다. 현재 청정수소 생산량이 전무하다는 점을 감안해 업계 기술이 발전할 때까지 유예 기간을 둔 것이다.

하지만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블루수소를 청정수소에 포함한 것은 꼼수라고 지적하며 그린수소만 청정수소 범주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레이수소를 의무구매 대상에 포함한 것과 청정수소 비중 확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법안에 담기지 않은 것도 문제 삼고 있다.

이에 애초 올 상반기 법안 통과 후 내년부터 CHPS를 도입하려던 정부 계획이 틀어졌고, 수소 생태계 구축에 동참하려고 나섰던 기업들에 그 피해가 돌아가고 있다. 발전사들은 수소발전의무구매제도가 도입되지 않자 수소 구매 비중을 줄이고 있다. 당연히 연료전지 증설도 계획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연료전지 발주량 확대를 기대하며 설비 투자를 늘린 부품사들은 투자비용을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연료전지 부품 업체인 J&L테크 관계자는 “수소법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내년도 사업계획을 확정하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또 다른 부품업체 관계자는 “수소법 계류로 연료전지 증설이 늦어지면 관련 부품업체에 쓰나미 같은 피해가 닥칠 것”이라며 “정부 말만 믿고 연료전지 분야에 투자했는데 기존 주력 사업마저 휘청거릴 위기”라고 했다.

에너지업계에서는 여당 내 일부 의원의 법안 보이콧 행태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을 반복하며 태동 단계인 수소 생태계 자체를 붕괴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 한 관계자는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사람은 없고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의 목소리만 큰 상황”이라며 “국내 수소 생태계가 무너지면 결국 국내 시장도 해외 기업들의 놀이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지훈/정의진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