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부터 단계적 일상 회복을 시행하면서 이제는 어떻게든 코로나와 함께(위드 코로나)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걸 받아들인 듯했다. 그런데 지난주에 오미크론이라고 하는 새로운 변이가 발견되면서 오미크론이 큰 문제네, 아니네 말도 많다. 이 혼돈의 시기에 누군가가 깔끔한 해답을 내주면 좋겠는데 과학이 그 역할을 해줘야만 한다는 기대도 있는 듯하다. 궁극적으로는 과학에서 답을 찾아야 하겠지만, 사실 그 시기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만큼 빠르지 않을 수 있다.
필자가 박사 학위를 받을 무렵, 초고체 헬륨이 아주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돼 큰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풍선을 띄우거나 목소리를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기체로 우리에게 익숙한 헬륨을 25기압 이상의 압력으로 영하 273도까지 낮춰주면 분명히 결정 구조를 갖는 고체인데 액체처럼 흐를 수 있을 것이라는 도저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론적 예측이 오랫동안 있어 왔다. 헬륨 연구에 얽힌 역사적인 이유로 이렇듯 고체이면서도 흐를 수 있는 물질 상태를 초고체라고 부르는데, 바로 그 무렵 고체 헬륨이 초고체일 수도 있겠다는 첫 실험적 증거가 발표됐던 것이다.
그 이후로 고체 헬륨이 진짜 초고체인가에 대해 해당 분야 연구자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있었고, 필자도 이에 대해 흥미를 느껴서 교수로 임용되기 전까지 고체 헬륨을 연구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적어도 당시에 관측된 현상은 초고체의 증거가 아니라고 결론이 났고, 새로운 물질을 발견했을지 모른다는 학계의 큰 기대감도 오래지 않아 사그라들었다. 그런 결론이 나기 전 ‘고체 헬륨은 초고체가 맞는 것 같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던 필자는 학계 내부의 ‘과학 논쟁’에서 패배한 셈이다. 관점에 따라서는 그게 과학자로서의 경력에 독이 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연구 결과의 성패 여부를 떠나서팽팽한 ‘과학 논쟁’을 아주 가까이서 지켜보고 참여한 것은 무척 값진 경험으로 남았다.
과학 이면에 감춰진 인간적 반목들대학생 시절까지 받은 과학 교육은 입증된 이론에 대한 교육이 주를 이뤘다. 그런 이론들이 정립된 역사에 대해서도 조금 배우기는 했지만 대부분 당대의 과학적 난제를 해결한 영웅적 서사 위주였고, 많은 경우에 과학에서 논쟁이란 그런 영웅의 혜안이 없는 불완전한 인간들이 겪는 불필요한 과정처럼 다뤄졌다.
그러다가 대학원 이후에 직접 연구하면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 중 하나는 과학은 그때까지 배운 것에 비해 훨씬 지저분한 학문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미 확립돼 교과서에 실린 내용들을 다루지 않는 과학의 최전선은 분야를 막론하고 ‘내가 맞고 네가 틀리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각축장이었다. 그 주장들 중에는 물론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소위 과학적인 것들도 있었지만, 오랜 논쟁의 과정에서 인간적 반목이 축적돼 맹목적인 것들도 놀라울 정도로 많았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과학’이라는 이름을 걸고 벌어지는 일들이었다. '오미크론 심각성' 논란도 진행중혹자는 과학의 태동기에는 그동안 축적된 지식이 많지 않았기에 과학 패러다임을 뒤흔들 몇몇 영웅들이 대단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고, 거의 완성된 과학 체계 안에서 지식을 확장하고 있는 오늘날에는 지엽적인 내용에 대해 논쟁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는 오랜 논쟁에서 살아남은 과학 이론에 대해 후대에 회고적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생겨나는 사후 확신 편향이다.
초고체 논쟁이 한창이던 시절, 이미 노벨상을 받은, 위대한 과학자 서사에 익숙한 이들의 눈에는 현대 물리학계의 ‘영웅’으로 비쳐질 만한 인물들도 그 논쟁에 참여했다. 그렇지만 그들이라고 모든 문제에서 더 뾰족한 답을 찾아 논쟁의 종지부를 찍어주는 것도 아니었다. 논쟁의 쟁점을 줄여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설계한 새로운 실험들은 논쟁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결과들을 뱉어내기 일쑤였다. 십수 년의 세월간 많은 이들이 기울인 노력은 초고체가 아니라는 결론으로 수렴해 갔다.
과학은 늘 이렇게 논쟁을 통해서 발전해 왔다. 오미크론 변이는 물론이고 코로 바이러스 전반에 대해서도 우리는 지금 과학사적으로 그 논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셈이다. 누구나 오미크론 변이가 심각한지 그렇지 않은지 당장 답을 얻고 싶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에 대해 성급한 결론을 내려 잘못된 정보를 유포하기보다 이에 대한 연구 결과들이 차곡차곡 쌓이기를 기다릴 때다.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과학 논쟁이 어떻게 이뤄지고 그 결론이 어떻게 정리되는지 관찰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