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는 방치, 교육 물품 사라지는데…예산만 다 쓰면 '우수 교육청'

입력 2021-12-01 17:05
수정 2021-12-09 15:35

“민간 기업이었으면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을 만한 수준이다.”

전국 17개 광역시·도교육청의 작년 결산서를 분석한 전문가들은 대부분 지방교육청의 재정관리가 낙제 수준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한국경제신문이 한국공인회계사회·재정성과연구원과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다.

특히 재무제표와 공유재산 대장 간 차이가 60조원에 달할 정도로 부실한 자산관리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교육청 예산이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특별회계로 독립 운영되는 탓에 지방의회의 감시가 상대적으로 소홀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지자체 의원들이 교육청 결산 때 예산 집행률만 들여다보고 “왜 돈을 다 쓰지 못했느냐”고 질타하다 보니 지방교육청들도 자산관리는 제쳐놓고 예산 소진에 급급했다는 지적이다. 방치되는 폐교, 사라지는 물품
지방교육청이 매년 새로운 사업을 벌이는 데 집중하는 동안 폐교 부지 등 유휴자산은 방치되고 있다. 감사원 집계 결과 전국 1387곳에 달하는 폐교 부지와 건물 가운데 29.5%인 490곳(지난해 3월 기준)이 활용 또는 임대되지 않고 내버려졌다. 인천 강화도의 한 폐교는 정수기 방문판매업체가 10년 가까이 합숙시설로 무단 사용해오다 지난 3월 40여 명이 코로나19에 집단감염되고 나서야 강제 폐쇄됐다. 일부 폐교는 무성히 자란 잡초와 허물어진 건물로 흉물이 되거나 우범지역으로 전락해 지역주민의 민원 대상이 되고 있다.

구축물과 집기 등 물품 현황은 매년 오락가락한다. 제주교육청은 지난해 결산에서 옹벽·통신·배전·급수시설 등 구축물 부문에서 31억7000여만원 규모의 장부등재 누락 등 오류을 발견해 뒤늦게 정정했다. 물품·집기 등을 장부에 누락하거나 폐기된 물건을 반영하지 않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교육청 결산 검토보고서에도 “관리대상 물품 실질을 반영하지 않으면 불필요한 구매로 예산이 낭비되고 물품 조달이 늦어지는 피해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자투리 부지는 현황 파악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감사원이 서울과 경기지역 공유재산 대장과 토지 대장을 대조해보니 작년 7월 기준 18만7091㎡ 규모 토지의 현황이 불일치했다. 김동욱 제주대 회계학과 교수는 “기업 회계라고 치면 재무관리의 기본인 재고 실사도 하지 않고 사업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사후관리 없이 “일단 쓰고 보자”자산관리에 대한 감시가 취약한 데다 예산을 최대한 소진해야 좋은 성과로 평가받는 탓에 ‘일단 쓰고 보자’는 식의 졸속 예산 편성 역시 매년 반복되고 있다. 최근 편성한 지방교육청 2차 추경안 심사 과정에서도 지방의원들의 지적이 잇따랐다. 충남교육청은 2019년부터 65억원을 들여 대당 약 1000만원인 미세먼지 신호등과 250만원짜리 알림판 등을 유치원과 초·중·고교 342곳에 설치했다. 올해에도 66억9200만원을 반영하려고 했다. 하지만 도의회에서 이 장비가 ‘우리 동네 대기정보’ 앱의 정보를 보여주는 표시장치에 불과하다는 질타를 받고 3분의 2가량이 삭감됐다.

서울교육청은 올해 청소년·주민 평생학습 시설 사업인 ‘서울형 몽실학교’ 등의 구체적인 사업 대상을 선정하지 않고 1447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현금 지원도 잇따랐다. 경북교육청은 도내 학생들에게 교육재난지원금 명목으로 1인당 30만원을, 서울교육청은 중·고교 신입생에게 입학준비금 명목으로 1인당 3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충북교육청은 모든 학생에게 10만원씩 주기로 했다.

한 회계법인 부대표는 “지방교육청은 세금을 거둬 살림을 꾸리는 지자체와 달리 교부금을 쓰기만 하는 구조여서 감시와 견제가 없으면 스스로 짜임새 있게 재정을 관리할 유인이 적다”며 “지방의회 결산도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결산에 앞서 회계법인 등 감사인은 감사가 아니라 ‘검토’만 한다. 형식에 맞게 작성됐는지, 장부에 틀린 숫자는 없는지 등을 확인하는 수준이며 별도 의견도 달지 않는다.

김이배 덕성여대 회계학과 교수는 “교육청에 돈이 남아도는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미지수”라며 “1년 단위 세입·세출만 신경쓸 게 아니라 사업 우선순위에 따라 장기 계획을 세우고 기금을 적극 활용하는 등 재정관리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