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이 발달하면서 각종 데이터의 가치가 커지고 있다. AI는 데이터를 학습한 만큼 성과를 내기 때문이다. 결과물 수준은 데이터의 질이 결정한다. 의료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개인 식별 데이터를 확보하는 일부터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활용할 때마다 개인의 허락을 받아야 해서다. 의료 정보 플랫폼 스타트업 메디블록은 이런 문제를 블록체인 기술로 해결해 주목받고 있다. 블록체인으로 의료 정보 활용도 높여고우균 메디블록 공동대표는 30일 “블록체인 기술로 개인의 신원 증명 과정이 크게 단축된다”며 “수많은 의료 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환자 A의 치료 정보를 보유한 B병원의 관련 데이터를 연구소나 제약사가 이용하기 위해서는 A가 B병원에서 직접 관련 자료를 받아 전달해야 한다. 하지만 관련 데이터에 블록체인을 적용하면 B병원은 A씨의 의료 정보가 필요한 연구소에 바로 제공할 수 있다. 블록체인으로 데이터의 위·변조가 불가능하고 개인의 승인은 온라인으로 확인이 가능해 의료 정보 열람이 쉽기 때문이다.
고 대표는 “의료 데이터를 이전보다 쉽게 확보한 의료 연구기관은 새로운 치료법을 빠르게 개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 대표와 2017년 메디블록을 창업한 이은솔 공동대표 모두 의사 출신이다. KAIST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고 대표는 삼성전자에서 개발자로 4년 동안 근무하다 경희대 치의학전문대학원으로 진학했다. 치과의사로 일하다 의료 데이터 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창업에 나섰다. 고 대표의 고등학교 동기인 이 대표는 한양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아산병원에서 영상의학과 전문의로 5년 동안 근무했다. 이 대표도 제대로 된 의료 정보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고 대표와 뜻을 같이했다. 국내 의료시스템 디지털 전환메디블록은 의료 정보 유통 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로 2019년 의료 정보 공유에 최적화된 블록체인 시스템인 ‘패너시어’를 내놨다. 같은 해 국내 최초 블록체인 기반 간편보험청구 서비스 ‘메디패스’를 출시했다. 메디패스 앱을 이용하면 실손보험 가입자가 보험금 청구를 위해 병원에서 진단서, 진료명세서 등 종이 서류를 일일이 뗀 뒤 보험사에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블록체인 기술로 개인의 신원 증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개인 진료 내역의 실시간 확인도 가능하다.
메디블록은 최근에 차세대 전자차트(EMR)인 닥터팔레트를 출시했다. 의료진 대상 서비스다. 클라우드 기반으로 작동해 외부에서도 접근이 가능하다. 고 대표는 “기존 전자차트 서비스는 대부분 의료진의 PC에 설치돼 PC가 고장 나면 의료 활동을 할 수 없고 랜섬웨어 침입에도 취약하다”며 “닥터팔레트는 의료 항목에 따른 건강보험과 의료급여 자격 여부도 실시간으로 반영해 의료 비용 정산이 정확하다”고 설명했다.
메디블록은 기술력을 인정받아 빌 게이츠가 이끄는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과 KT가 진행하는 ‘감염병 대비를 위한 차세대 방역 연구’에서 블록체인 플랫폼 개발도 담당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네이버 등으로부터 시리즈A(첫 번째 투자 단계)로 40억원을 투자받았다. 고 대표는 “내년에는 블록체인 기반 의료 데이터를 매매할 수 있는 플랫폼을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