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부터 신약까지…진화하는 유전자가위

입력 2021-11-30 17:09
수정 2021-12-01 02:30

지난해 노벨화학상 수상 기술이었던 ‘유전자가위’ 기술의 무대가 넓어지고 있다. 국내 유전자가위 기업들이 신약 개발을 넘어 진단키트, 신품종 작물 개발에까지 유전자가위 기술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툴젠이 가장 적극적으로 기술 협력에 나서는 가운데 다른 업체들도 잇따라 공동 연구를 하고 있다. 툴젠, 식물 기반 바이오의약품 도전 툴젠은 이그린글로벌과 손잡고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해 신품종 감자를 개발하기로 했다. 툴젠은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편집해 특정 단백질의 발현을 조절할 수 있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을 갖고 있다. 작물용 감자를 개량할 땐 대개 특정 유전자를 외부에서 삽입하는 방식이 쓰인다. 하지만 이런 유전자변형식품(GMO)은 인체와 환경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유전자가위를 이용하면 다른 유전자를 삽입하지 않고 원래 갖고 있는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품종 개량이 가능하다. GMO 논란에서도 비켜날 수 있다. 지난해 미국 농무부(USDA)는 툴젠이 항산화·항노화 성분 함량을 두 배 이상 높인 콩 종자를 GMO가 아니라고 했다. 이 회사는 갈색으로 색이 변하는 현상을 억제한 감자도 개발해 지난 6월 국내 특허 등록을 마쳤다. 이그린글로벌은 이 감자를 활용해 병충해에 강한 씨감자를 대량생산하는 연구를 할 계획이다.

지난달 기준 툴젠이 체결한 유전자가위 기술이전 계약은 17건에 달한다. 이 회사는 장미 등 특정 식물의 유전자를 편집해 식물 기반 항체·백신 의약품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 식물세포 배양 기술을 가진 바이오에프디엔씨와 공동연구협약을 맺었다. 바이오에프디엔씨 관계자는 “광견병으로 불리는 공수병에 대한 항체치료제 개발이 첫 목표”라며 “식물세포는 동물세포에 비해 대량생산이 용이해 의약품용 항체 생산 비용이 기존 방식 대비 10분의 1 수준으로 낮다”고 말했다. mRNA 신약과 진단키트 개발도툴젠은 메신저 리보핵산(mRNA) 신약 개발도 지원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8월 올릭스 자회사인 엠큐렉스와 협약을 맺고 mRNA 치료제를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mRNA는 체내에서 쉽게 분해되는 성질이 있다. 두 회사는 이런 성질을 유전자가위로 최소화해 약물의 안정성을 높일 계획이다. 툴젠은 연구용 동물을 개발하는 젬크로, 암 유전자 변이 여부를 확인하는 진단키트 개발사 SML제니트리 등과도 연구협약을 맺었다.

다른 유전자가위 기업들도 협업 연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엔세이지는 바디텍메드와 유전자가위로 바이러스 유전자를 검출하는 방식의 차세대 진단키트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지플러스생명과학은 지난 22일 조선대와 연구협약을 맺고 식물 기반 백신·치료제 개발 플랫폼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이전을 통해 수익원을 다각화하기 위해서라도 유전자가위 기업들이 다양한 사업군에서 협업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며 “화장품, 친환경 플라스틱 소재 분야로도 사업 확장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면역세포치료제 개발사들도 유전자가위 기술 확보에 나섰다. 앱클론은 지플러스생명과학 툴젠 엔세이지 등과 잇따라 항암제 공동개발 협약을 맺었다. 앱클론 관계자는 “범용 키메릭항원수용체 T세포(CAR-T) 치료제, 환자 맞춤형 CAR-T 치료제, 키메릭항원수용체 자연살해세포(CAR-NK) 치료제 등의 개발에 유전자가위 기술을 적용하겠다”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