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과 유리가 만나 아담한 크기의 탑이 솟았다. 묵직하고 거칠면서 기나긴 역사를 품고 있는 자연 재료인 돌과 매끈한 현대적 소재인 유리가 이질감 없이 어우러지며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중견 조각가 신재환(48)이 청각장애로 인한 어려움을 딛고 20년 넘게 조각에 매진한 끝에 도달한 기념비적 작품 ‘그 곳을 향하여’(사진)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41에서 신 작가의 개인전 ‘그 곳을 향하여’가 열리고 있다. 2018년부터 올해까지 그가 만든 조각 12점을 선보이는 전시다. 남서울대에서 유리조형 박사과정을 공부한 작가의 박사학위 청구전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에서는 상반되는 소재인 돌과 유리가 만나 독특한 미감을 연출한다. 둘을 접목시켜 조각 작품을 만들어낸 것은 국내에서 신 작가가 처음이다. 이를 위해 그는 두꺼운 유리판을 에폭시에 접착한 뒤 덩어리를 만들어 돌에 붙이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덩어리를 다시 기계로 잘라 형태를 만들어낸 뒤 수없이 그라인더로 연마해 작품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작품 한 점을 완성하는 데 두 달이 걸린다고 한다.
작업 과정만큼이나 한 살 때 청각장애와 언어장애 판정을 받은 신 작가의 삶도 지난했다. 고등학교 때 조각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지만 장애 때문에 미대 입시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여러 번의 도전 끝에 상명대 조소과에 들어갔고, 밤늦게까지 돌을 두드리며 남들보다 갑절은 더 노력했다. 실력으로 차별을 극복하고 들어간 서울시립대 환경조각과 대학원에서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학부생들을 꼼꼼히 챙기며 시간강사 일까지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신 작가가 조각가의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이기도 하다. 그와 마찬가지로 청각장애를 앓았지만 한국 화단의 거목으로 우뚝 선 운보 김기창 화백(1913~2001)은 그에게 “훌륭한 작가가 돼서 장애인들을 위해 보람있는 일을 많이 하라”고 격려했다. 석조각 거장 전뢰진(92)은 그에게 6년간 조각을 가르쳤다. 두 만남 모두 아들을 위해 청작화랑을 열고 30년 넘게 운영해온 어머니 손성례 대표 덕분에 가능했다.
고난과 극복의 서사가 녹아 있는 신 작가의 삶처럼, 작품은 서로 상반되는 여러 속성을 통해 삶에 대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는 “밝은 색과 어두운 색, 투명함과 불투명함 등을 통해 인간의 이중성을 표현했다”며 “작품 제목 ‘그 곳을 향하여’는 서로 다른 것들이 만나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신 작가는 지금까지 개인전을 13회 열고 국내외 주요 아트페어에 120여 회 참여하는 등 탄탄한 실적을 쌓아왔다. 그의 작품은 조형성과 장식성이 뛰어나 조각으로는 이례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한 컬렉터는 지난 10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서 눈여겨본 작품이 팔려 아쉬워하다가 이번 전시에서 비슷한 작품을 구입해 갔다고 한다. 전시는 12월 7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