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 세대 갈등…법원 "고령직원 동의만 따로 받을 필요 없어"

입력 2021-11-30 13:49
수정 2021-11-30 14:16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즉시 적용 대상인 고령 근로자들의 동의만 별도로 받을 필요는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제15민사부(재판장 이숙연)는 지난 19일 국민건강보험공단 2급 이상 고위직 근로자 강 모씨 등 19명이 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하고, 원심과 마찬가지로 공단 측의 손을 들어줬다.

원고 강 씨 등은 공단 입사 후 1, 2급으로 재직하고 있거나 퇴직한 사람들이다. 공단은 2013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이 개정됨에 따라 전직원 정년을 60세로 올리기로 했다.

당초 공단 규정에 따르면 2급 이상 직원의 정년은 60세, 3급 이하 직원의 정년은 58세였으나, 전직원 정년을 60세로 연장하고 1, 2급 직원들에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공단은 이를 위해 2015년 공단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과 취업규칙 변경을 위한 노사 합의를 체결했다.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려면 과반수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의 찬성이 필요하다.

결과적으로 이로 인해 원래 정년이 60세였던 1, 2급 이상 근로자들만 손해만 입게 된 셈이다. 이들은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원고 직원들은 "임금피크제에 동의해 준 공단 노조는 3급 이하 근로자들만 대상으로 조직됐다"며 "2급 이상과 3급 이하는 임금체계와 근로조건이 다른 별개 집단이기 때문에, 공단이 임금피크제 도입을 하려면 2급 이상 직원들만을 대상으로 별도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밖에 임금피크제가 △연령 차별 금지를 규정한 고령자고용법에 위반되며 △먼저 2급이 된 직원이 후배 직원보다 낮은 임금을 지급 받는 것도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위반된다는 주장도 펼쳤다.

하지만 법원은 공단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임금피크제 도입 당시 적용 대상 연령이 되지 않은 3급 이하 근로자들도 추후 임금피크제의 적용을 당연히 받게 된다"며 "3급 이하 직원들도 간접적, 잠재적으로 임금피크제 적용이 예상돼 같은 임금체계 안에 있는 근로자들이므로, 임금피크제 도입에 동의해줄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령자고용법도 위반이 아니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고령자고용법은 '특정 연령 집단의 고용유지 등을 위한 조치를 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연령차별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임금피크제는 청년일자리 창출이란 목적이 있고, 실제로 임금피크제 이후 공단의 신규채용 규모가 확대된 점을 보면 고령자고용법에서 예외사유로 인정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꼬집었다.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 원칙을 위반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승진 연도가 빠르다는 이유만으로 높은 가치의 노동을 제공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2급 이상 근로자들은 호봉제가 아닌 연봉제로 임금이 결정되는 점 등을 고려하면, 먼저 승진한 근로자가 승진이 늦은 근로자보다 항상 더 급여를 많이 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원고 측의 주장을 일축했다.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세대 갈등은 공공기관에서 만연해 있는 상황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42부는 인천국제공항공사 전현직 직원 12명이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상대로 낸 11억7970만 원의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원고들은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전현직 1, 2급 전문위원들이며, 이 소송은 이번 건강보험공단 소송과 사실관계가 거의 유사하다.

공단을 대리한 조병기 변호사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공공기관에서 임금피크제 무효 소송은 상당히 만연해 있다"며 "이번에 잇따라 나오는 판결들이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