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대선 앞두고 '차별금지법' 밀어붙이는 당·정·청

입력 2021-11-29 17:07
수정 2021-11-30 01:49
“전에 차별금지법을 일방통행식으로 제정해선 안 된다고 발언한 적이 있지 않나요.”(조선대 대학생)

“차별금지법은 필요하고, 입법을 해야 합니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 후보가 29일 조선대에서 열린 ‘학생들과의 대화’에서 주고받은 말이다. 그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여론을 뚫고서라도 입법을 강행해야 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 후보는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사회적 합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면서도 “사회적 합의란 대체로 공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모두가 동의하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지난 8일 한국교회총연합회 간부들과의 대화에서 “(법이) 현실에서 잘못 작동할 경우에 대한 우려가 높은 것 같다”며 “해외에도 왜곡된 사례가 존재한다”고 한 것과는 결이 달랐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부겸 국무총리도 임기 말 이례적으로 차별금지법 도입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문 대통령은 25일 ‘국가인권위원회 20주년 기념식’에서 아직까지 법이 제정되지 않은 점을 거론하며 “시대 변화에 따른 새로운 인권 규범을 만들어나가는 일에 역량을 모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이 임기 중 차별금지법을 공개 언급한 첫 사례였다. 이어 김 총리가 26일 기자간담회에서 “국회에서 지금보다는 공론화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국회는 반대 여론을 의식해 차별금지법 처리에 신중한 모습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9일 전체회의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국민청원의 심사 기한을 여야 합의로 이달 10일에서 2024년 5월로 미뤘다.

차별금지법은 민주당 내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25일 민주당 주최 토론회에선 “법이 제정되면 차별이 사라질 수 있다는 주장은 법 만능주의의 환상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상민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은 차별 금지 기준에 성별, 장애, 국적, 출신 지역, 혼인 여부뿐 아니라 학력, 고용 형태 등 비슷한 법안이 있는 선진국엔 없는 기준까지 포함돼 있다. 전문가들은 “차별이 문제가 됐을 때 국가권력의 조사·심의·판단 권한이 쉽게 행사되면 개인의 자유 위협이 될 소지가 있다”(김원영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고 우려한다.

그러나 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연일 ‘차별금지법 처리’를 주장하고 있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진보 진영의 표심을 겨냥한 듯한 모양새다. 여권이 각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선거용 입법’을 밀어붙인다면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건 차별금지법보다 ‘입법 포퓰리즘 금지법’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