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그룹이 수소·암모니아 등 차세대 친환경 선박의 핵심인 엔진 연구개발(R&D) 조직을 대폭 강화했다. 이미 가스와 벙커C유를 함께 사용해 탄소 배출을 줄이는 이중연료추진 엔진 분야에서 독보적 기술력을 갖고 있지만 급변하는 환경 규제 속에 언제, 어떻게 조선업의 패러다임이 바뀔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에서다.
○메탄올·암모니아·수소 기술 전담 조직 신설
29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한국조선해양 자회사 현대중공업은 최근 엔진기계사업부 산하 R&D조직을 개편했다. 기존에는 기술·연구부문으로 하나의 조직이었던 것을 기술 부문, R&D부문으로 나눴다. 기술 부문에는 엔진기술개발부를, R&D부문에는 수소에너지연구실과 가상제품개발연구실을 신설했다.
엔진기술개발부는 메탄올, 암모니아 등 액화천연가스(LNG)의 뒤를 잇는 차세대 선박연료를 활용한 엔진 기술 개발에 주력한다. 메탄올과 암모니아는기존 선박유에 비해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이 적어 수소 시대로 가기 전 중간 다리 역할을 할 대체연료로 꼽힌다.
수소연구실은 액화수소운반선 등의 추진시스템으로 쓰이는 수소연료전지와 생산 과정이 100% 친환경적으로 이뤄지는 그린수소의 핵심인 수전해 시스템을 개발한다. 가상제품연구실은 인공지능(AI) 기술이 접목된 디지털트윈 기술을 개발한다. 실제와 똑같이 만들어진 가상공간에서 엔진 등 주요 부품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인도 전 문제점을 찾아 개선시키는 AI기반 연구시스템이다.
이번 개편은 현대중공업그룹이 2019년 6월 조선 사업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 설립 이후 추진해온 R&D조직 강화 작업의 일환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계열사에 산재돼있던 원천기술 연구 기능을 통합해 한국조선해양 내에 조선해양부문 R&D 컨트롤타워인 미래기술연구원을 설립했다.
이후 원천기술은 한국조선해양, 상용화 기술이나 설계는 계열사인 현대중공업이 맡는 것으로 역할을 나눴다. 작년엔 선박 자율운항 소프트웨어(SW)등 고도의 첨단 기술이 요구되는 분야를 아예 분사시켜 자율운항 전문 개발사 '아비커스'를 설립하기도 했다.
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아직 초기 단계인 수소 등 차세대 기술 분야를 선점하기 위해 R&D 조직을 정비하고 있다”며 “신규 연구인력의 절반을 신사업에 투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친환경 연료가 조선 패러다임 바꾼다"
현대중공업은 이미 LNG나 액화프로판가스(LPG)를 벙커C와 함께 연료로 사용하는 이중연료엔진 분야에서 전 세계 시장의 30%를 점유하고 있는 '글로벌 플레이어'다. 올해 한국조선해양이 수주한 221척 가운데 절반인 107척이 이중연료추진선일 정도다.
그럼에도 이처럼 차세대 연료 엔진 연구에 주력하는 것은 어떤 연료를 사용하는지가 향후 조선업계의 패권을 좌우할 '키'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세계 1위 해운사 머스크는 현대중공업에 1만5000TEU급 대형 컨테이너선 8척을 발주하며 친환경 연료 경쟁의 신호탄을 쐈다. 선박에 대한 탄소감축 규제가 본격화되는 2023년 이후 암모니아와 수소 추진선 발주도 예상되는 상황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개발 중인 첨단 기술을 내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 전시회인 세계가전전시회(CES)에서 선보일 계획이다. 조선 분야에선 자율운항, 친환경 추진시스템을, 건설기계 분야에선 무인자동화, 원격 조정 기술 등을 전시한다. 현대중공업그룹이 CES에 참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친환경 선박 개발이 조선산업의 당면 과제로 떠오르면서 R&D의 역할이 그 어느때보다 커졌다”며 “세계1위 조선소의 행보라 관련 개발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