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통보다 큰 동그란 얼굴, 쭈뼛 선 머리카락, 단순한 점과 선으로 그려낸 천진난만한 미소…. 2001년 첫선을 보인 뒤 20년간 국내외에서 많은 사랑을 받아온 권기수 작가(50)의 캐릭터 ‘동구리’다. 그런데 전시장에 나와 있는 동구리들은 평소의 귀여운 모습과 정반대로 기괴하고 섬뜩한 느낌을 준다. 번진 먹선은 마치 눈물이나 피가 흐르는 모습 같고, 전반적인 색채와 구성도 음산하다. 2m 크기의 조형 작품에 금박을 입힌 ‘황금 동구리’에서는 황금만능주의에 대한 노골적인 냉소가 느껴진다.
서울 평창동 프로젝트스페이스미음에서 열리고 있는 권 작가의 개인전 ‘동구리 20년’은 지금까지 공개된 적 없는 동구리의 본모습을 날것 그대로 감상할 수 있는 자리다. 동구리 캐릭터 발표 2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회화와 조각 등 근작 40여 점이 나와 있다.
권 작가는 지난 20년간 구상과 추상, 동서양을 넘나드는 다채로운 화풍의 배경 위에 동구리 캐릭터를 그려왔다. 귀여운 캐릭터가 미소를 띤 모습은 관객들에게 행복감을 선사했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작품들은 냉소적이고 과격하다. 그는 “동구리는 원래 현대인의 고독과 상처를 표현한 캐릭터”라며 이렇게 말했다.
“처음 그렸던 동구리도 이렇게 어두운 모습이었어요. 캐릭터가 혼자 있는 모습과 획일적인 웃음으로 상처받은 개인을 표현했죠.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전시 제의를 받고 전시 장소에 맞는 작은 그림을 그리다 보니 귀엽게 단순화된 이미지가 탄생했어요. 행복해 보이는 캐릭터의 모습을 사람들이 좋아해서 지금의 동구리 이미지가 정착된 거죠. ”
전시장에 나온 드로잉들은 수묵과 주묵(붉은 먹),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작품들이다. 동양화를 전공한 권 작가가 빠른 붓놀림과 거친 붓자국, 자유롭게 흐르는 물감 자국을 이용해 먹의 물성을 그대로 드러낸 게 특징이다. 황금 동구리 상은 캐릭터가 거둔 상업적인 성공을 상징한다. 권 작가는 “정제되지 않은 동구리의 본 모습과 황금 동구리상을 같은 장소에 배치해 캐릭터의 상반되는 속성을 대비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무 살이 된 동구리의 인기는 여전히 뜨겁다. 지난봄 대만에서 열린 기획전과 가을 아트페어에 출품했던 작품들이 완판됐고, 온라인에서는 수천만원 상당의 그림이 실시간으로 팔려나가고 있다. 금과 은을 사용한 근작들은 중화권에서 특히 인기라고 한다. 전시는 내년 1월 20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