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리비안 같은 '꿈의 주식' 한국엔 없는 까닭

입력 2021-11-22 17:02
수정 2021-11-23 00:25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 리비안은 하루에 전기차 3~4대를 생산한다. 시가총액은 130조원이다. 올해 3분기까지 503만 대를 판매한 현대차 시총은 46조원대다. 아무리 신사업이고, 성장성이 높다지만 한국 시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꿈의 주식’이다.

미국 나스닥시장은 꿈의 가치를 인정해 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테슬라가 대표적이다. 적자가 이어져도 주가는 계속 올랐다. 과거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이 모두 그랬다. 최근엔 리비안이다. 리비안과 아마존이 협력해서 만들어갈 물류 혁신의 꿈을 현재 가격으로 쳐주는 것이다.

꿈에 투자하는 건 미국의 투자 문화다. 모험 자본이 스타트업이 갖고 있는 꿈에 투자하고, 성공한 사례가 누적된 결과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실리콘밸리 자본의 기업가치 평가 기준은 최고경영자(CEO)의 눈빛이라 할 정도”라며 “꿈을 인정하고 기다리면서 10개 중 하나라도 성공하면 된다는 게 미국의 투자문화”라고 설명했다.

수소차 스타트업인 니콜라 사례도 그렇다. 이 회사에 대해 지난해 9월 공매도 세력인 힌덴버그 리서치는 ‘사기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니콜라 시총은 여전히 5조7000억원대다. 투자자들은 완전히 등을 돌리지 않았다.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대표는 구속되고, 해당 종목은 거래정지 또는 상장폐지가 되는 게 자연스럽다. 한 증권사 대표는 “혁신이 있는 곳에 돈이 모이는 게 아니라 돈이 모이면 혁신이 생긴다고 믿는 게 미국의 투자 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쿠팡이 미국에 간 이유도 꿈을 인정받고 싶어서다. 한국에 상장했더라면 쿠팡이 지금의 시총 56조원은 엄두도 내기 어렵다.

한국 기업들도 앞다퉈 신사업에 뛰어들지만 시장에선 꿈의 값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 기존 사업 비중이 큰 탓도 있다. 하지만 더 근본적 문제는 세계를 매료시킬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민규 KB증권 연구원은 “과거 한국 시장의 상상력이 풍부해졌던 시기는 이익이 늘어난 이후”라며 “지금은 이익이 쌓였음에도 상상력은 풍부해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2004년 이후 발간한 국내 증권사 리포트 43만 개에서 상상력 관련 키워드가 얼마나 나오는지를 분석한 결과다.

기업들의 노력만 강조할 순 없다. 정부가 기업들이 펼치는 상상의 무대를 인정해야 하는 것도 숙제다. 쿠팡 독점 규제법을 보면 어떤 스타트업이 한국 시장에 상장하고 싶을까란 말이 나올 수 있다. 리비안을 보면서 어떻게 한국이 꿈을 인정하고 키워주는 시장이 될 수 있을지 모두가 고민해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