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한국 겨누는 도시바 분할의 칼날

입력 2021-11-22 17:03
수정 2021-11-23 00:26
“1990년대 일본에 밀린 미국 기업들이 그랬던 것처럼 일본 전자기업들도 한국과의 경쟁에서 패한 2000년대 기업 분할에 나서야 했다.”

일본 IT 기업 전문 인수합병(M&A) 자문사 산업창성어드바이저리의 사토 후미아키 대표의 말이다. 메릴린치 도이치증권 등에서 전자기업 전문 애널리스트로 활동한 그는 20년 전부터 소니 파나소닉 도시바 등 전자 대기업의 ‘헤쳐 모여’를 주장해왔다. GAFA의 탄생 기반 기업분할1990년대는 문어발식 확장으로 전성기를 누리던 미국 기업들이 일본 기업에 세계 시장의 주도권을 내준 때다. 궁지에 몰린 미국 기업들이 꺼내든 반격의 카드가 기업 분할이었다.

그룹을 해체하고 자금과 인력을 살아남을 사업에 집중한 결과 미국에선 ‘파괴적 혁신’의 토대가 만들어졌다. GAFA(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로 대표되는 거대 테크기업이 속속 탄생했다. 현재 GAFA의 시가총액은 도쿄증시 1부시장 상장사 전체의 시총을 넘어섰다. 기업 분할을 통해 몸집을 날렵하게 바꾼 기업의 이익률은 오르는 경우가 많다. 기업 분할한 회사들로 구성된 S&P미국스핀오프(기업분할)지수는 2006년 말 산출을 시작한 이후 5배 뛰었다. 같은 기간 S&P500지수는 3.3배 올랐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 딜로이트는 도쿄증시 1부 상장사를 규모와 다각화 정도에 따라 16개 그룹으로 나눠 분석했다. 한 가지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기업일수록 이익률이 높았다.

매출 500억엔(약 5203억원) 이하, 최대 사업부의 매출 비중이 90% 이상인 ‘소규모 전업기업’의 12년 평균 영업이익률은 8.8%로 가장 높았다. 반면 매출이 2조엔 이상이고 최대 사업의 매출 비중이 50% 이하인 ‘거대 다각화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3.0%로 최저였다. 문어발 기업의 이익률이 꼴찌인 건 비효율성 탓에 기업 전체 가치가 계열사 가치의 합보다 낮아지는 ‘복합기업 디스카운트’가 발생해서다. 글로벌 자금이 일본 기업을 외면하는 주요인이기도 하다. 한국 기업도 예의주시해야그런데도 일본 경영인들은 복합기업 디스카운트 해소에 매우 소극적이다. 2017년 기업 분할제도가 도입된 이후 실제 사례는 중견기업 한 곳뿐이다. 일본의 경영자들이 기업 분할로 순익이 늘어나는 작은 회사가 되기보다 이익률은 낮지만 매출이 큰 기업으로 남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경제산업성이 실시한 조사에서도 경영자의 22%가 “성장성은 없지만 매출에 공헌하는 자회사는 적자를 내지 않는 한 정리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지난 12일은 사토 대표의 20년 주장이 현실화한 날이다. 도시바는 이날 기업설명회에서 회사를 3개로 분할하고 2023년 하반기 각각 상장한다는 중기 경영계획을 발표했다. 도시바를 인프라서비스와 디바이스, 남은 도시바그룹(도시바반도체) 등 3개 회사로 나누는 게 핵심이다.

일본 대표 기업의 분할 선언이 일본 경제계에 던진 충격은 엄청나다. 전문가들은 도시바 분할을 일본 종합전자회사 시대의 폐막 선언으로 해석한다. 다른 복합기업들도 도시바의 뒤를 따를 것이라는 의미다.

앞선 딜로이트의 분석에서 거대 기업이지만 한 가지 분야에 특화한 전업기업의 영업이익률은 7%로 16개 그룹 중 세 번째로 높았다. 분할 이후 도시바가 여기에 해당한다. 사토 대표도 “도시바의 복합기업 해체는 일본 산업부흥의 첫걸음”이라고 평가했다. 일본 전자기업들이 부활하면 그 칼날은 한국을 겨냥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도시바의 분할 이후를 예의주시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