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가정의 세대원은 평균 2.53명이다. 가정마다 1.88대의 차를 보유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 차량 수요는 더 늘었다. 경제 봉쇄로 대중교통 운행이 속속 중단됐기 때문이다. 중고차값은 1년 전보다 평균 30% 정도 뛰었다.
물가 급등은 다른 곳에서도 쉽게 체감할 수 있다. 휘발유값이 대표적이다. 미국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50개 주의 휘발유 평균 가격은 11월 현재 갤런(3.79L)당 3.41달러다. 작년 같은 기간(2.12달러) 대비 61% 폭등했다.
올해 5월부터 5%를 넘었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10월 6.2% 급등했다. 1990년 12월 이후 31년 만에 가장 많이 뛰었다. 에너지 가격이 전체 물가를 끌어올린 핵심 요인으로 파악됐다.
그래서일까. 조 바이든 대통령이 유가를 잡기 위해 전방위 압박에 나서고 있다. 취임 후 처음 열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전략적 비축유를 공동 방출하자고 제안했다. 한국과 일본, 인도 등에도 비축유 방출을 요청했다고 한다. 기름값 뛴다고 정유업체 조사한발 나아가 자국 내 석유·가스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에 나서라고 리나 칸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에게 서한을 보냈다. 비(非)정제유 가격이 한 달 동안 5% 넘게 떨어졌는데도 휘발유 판매가는 되레 3% 뛰었다는 게 이유다. FTC는 기업 독과점과 불공정 거래 행위를 조사하는 독립 행정기관이다.
석유·가스 업체들이 기름값을 조작해 불법적 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게 바이든 대통령의 의심이다. “대형 기업들의 반소비자적 행태가 늘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시장 평가는 싸늘하다. FTC가 석유·가스 업체들의 불법 행위를 입증할 증거를 찾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유가가 급등했던 2005년에도 비슷한 조사에 나섰지만 가격 조작 같은 불법 행위는 없었다. 리서치 회사 클리어뷰에너지파트너스는 “원유 가격이 하락해도 휘발유값은 뛴 과거 사례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서한에서 인용한 원유와 휘발유값의 차이가 정상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석유협회 역시 성명에서 “대통령 서한은 본질적인 시장 흐름을 간과하고 있다”며 “(문제를 풀려면) 미국산 석유와 천연가스의 안전하고 책임있는 개발을 독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제 유가가 뛰는 건 경기 회복 과정에서 급증한 수요를 공급량이 따라가지 못한 데서 발생한 수급 불일치가 근본 원인이란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진단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국가에서 휘발유 가격이 상승한 게 주요 근거다. 새 투자 막은 정책 실패는 외면미국 내 기름값이 더 많이 오른 게 문제라면 그 원인 역시 자국 내 정책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지적했다. 신문은 “표를 의식한 정치인과 환경단체 압력이 대형 석유 업체들의 신규 프로젝트를 백지화하는 데 일조했다”며 “(친환경 정책을 강조해온) 바이든 행정부가 유가 급등을 자초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송유관 건설 허가를 취소했고 셰일오일·가스의 신규 시추를 막는 조치를 잇따라 도입했다.
워싱턴포스트와 ABC가 지난 7~10일 미국인 100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는 53%에 달했다. 바이든 지지율은 41%로, 취임 후 최저였다. 물가 등 경제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응답자의 70%가 “경제 전망이 비관적”이라고 답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정책 대안을 마련하지 않고 희생양 찾기에만 몰두한다면 지지율 회복이 요원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