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밀이 아가와 즐기는 방구석 집콕놀이 [오세성의 아빠놀자]

입력 2021-11-20 06:01
수정 2021-11-20 08:45
<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2021년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처음엔 마냥 예뻐해 주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먹고 자는 게 다가 아니고 아이가 새로운 세상을 경험을 하려면 '놀이'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육아에 지친 아내를 위해 체력이 조금이라도 좋은 아빠가 나서야겠다 싶었습니다. 아빠는 처음이라 정답에 도달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편집자주]
"아바! 압~바... 빠! 압빠!" 퇴근하니 딸아이가 아빠를 외치고 배를 밀며 열심히 기어옵니다. 지난 3월 태어나 이제 8개월이 된 딸. 아빠를 보자마자 반갑게 나오는 딸을 보면,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8개월이 되자 어느새 손발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여러 사물에 관심을 보입니다. 체력이 보통이 아닙니다. 성인이라면 이미 지쳤을 만하지만 열심히 놀고 움직입니다. 그렇다보니 현실에서 엄마는 힘듭니다. 간혹 낮잠도 거르고 놀기 바쁜 날에는 엄마가 먼저 지쳐 쓰러집니다. 이 날도 그랬습니다. "이제 애 좀 봐줘"라는 아내의 말에 아이와 놀아줄 준비를 했습니다.

"아빠가 제대로 한번 놀아주겠다" 결심으로 산 비장의 무기를 가방에서 꺼냈습니다. 문구점에서 개당 900원짜리 자그마한 탱탱볼 2개입니다. 공을 튕기면서 놀았던 어린시절을 떠올리면서 자신있게 산 탱탱볼. 인생에서 처음 보는 탱탱볼에 아이가 기뻐하리라 생각하며, 공을 바닥에 튀겼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일까요. 좋아하기는 커녕 관심도 없었습니다. 딸아이는 한 번 쳐다보는가 싶더니 다른 곳으로 기어가더군요. 이름을 불러보지만 관심없다는 표시를 확실히 합니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딸이라 그런가. 아들은 공을 좋아하려나', '아무리 그래도 너무 관심이 없네' 등의 생각이 떠오릅니다.

거실에 앉아 안방으로 멀어져가는 아이 뒤통수를 멍하니 보고 있으니 쉬고 있던 아내가 기어이 몸을 일으킵니다. "이리 줘봐. 방법이 있어"라며 공을 가져가 버립니다. 아내는 컴퓨터로 뭔가를 하는가 싶더니 출력을 하고 바쁘게 움직입니다. 아내가 돌려준 공에는 아이와 제 얼굴이 붙어 있었습니다.

아내는 부지런히 만들어 줬지만, 얼굴 사진이 공에 붙어있으니 뭔가 '괴이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아내는 "애가 공은 낯설어도 아빠 모습은 친근하잖아. 아빠 얼굴이 붙어있으면 관심갖고 만지다가 공도 쉽게 가지고 놀게 될꺼야"라고 설명했습니다.


효과는 놀라웠습니다. 아이를 다시 앉히고 공을 보여주자 사진을 본 아이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작은 차이인데 큰 효과를 낸다 싶더군요. 더 관심을 받으려 공을 흔들다 바닥에 떨어트리니 집중하며 쳐다보던 아이가 꺄르르대며 웃었습니다. 아빠 얼굴과 자기 얼굴이 바닥에 떨어지는 걸 재미있어 하더군요. 몇 차례 공이 떨어지고 한바탕 웃음소리가 지나가니 아이가 공을 향해 손을 뻗기 시작했습니다.

손가락으로 찔러보고 손바닥으로 찰싹찰싹 때린 뒤 공을 잡아 입으로 가져가네요. 짧은 팔로 자기 머리만한 공을 열심히 붙잡고 작은 혓바닥은 날름대기 바쁩니다. 입을 잔뜩 벌린 얼굴 표정을 따라했더니 아이가 쳐다보고 웃다 공을 떨어트렸습니다. 아빠와의 재미있는 놀이, 성공에 한 걸음 다가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공 하나에 정신이 팔린 사이 '머리 어깨 무릎 발' 노래를 부르며 다른 공으로 몸 각 부위도 살짝 건드려봤습니다. 갑자기 다른 공이 나타나서 그런지 깜짝 놀라며 두 팔로 공을 찰싹찰싹 때립니다. 탱~ 탱~ 소리도 나고 반동도 있어서 그런지 재미있어하며 다시 때리고 잡길 반복합니다.


그 사이 흘린 공을 가져갔더니 이내 발견하고는 내놓으라고 기어왔습니다. 헌데 이미 잡고 있던 공이 있다보니 공을 배 밑에 깔고 엎드린 형태가 됐습니다. 배 밑에 공이 있는 느낌이 재미있는지 두 개 모두 자기 배 아래로 넣으려 합니다. 배밀이 다음 단계인 네발기기를 아이가 간접 체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20분 정도 놀았을까요. 아이가 흥미를 잃은 듯 창가로 가서 돌출된 턱을 잡고 섰습니다. 요 며칠 사이 이렇게 잡고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며 유리창을 탕탕 치곤 하더군요. 서있는 아이에게 자기 얼굴이 붙은 공을 보여줬습니다. 흥미가 생겼는지, 흔들흔들대면서도 공을 잡겠다고 열심히 발을 움직입니다. 그리고 이내 공을 품에 안았습니다.


별 것 아닌 공놀이처럼 보입니다. 아내는 이러한 놀이가 7~8개월 아이의 발달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새로운 놀잇감에 도전하는 자신감을 키운다고 합니다. 그리고 공을 가지고 노는 과정에서 손을 움직이고 촉감을 느끼면서 손과 팔이 자기 신체의 일부임을 깨닫는다고 하네요. 다리를 움직이면서는 추후 걸음마를 하기 위한 대근육을 발달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한바탕 놀이가 끝났지만 아이는 여전히 힘이 넘쳤습니다. 준비물 없이도 쉽게 할 수 있는 이불썰매로 2차전을 준비합니다. 이불에 아이를 올려놓고 끌어주면 되는 간단한 놀이입니다. 아빠는 이불을 열심히 당기며 땀만 쏟으면 됩니다.

다만 섬세한 힘 조절은 필요합니다. 거실 끝에서 이불 방향을 바꾸자 아이가 적응하지 못하고 떨어지려 하더군요. 아이가 나동그라지면 제 등에 빨간 손자국이 생길 게 뻔하니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했습니다.

공놀이를 하며 약간 지쳤었는지 10분 정도 만에 아이가 점차 미끄러지더니 발목이 이불 밖으로 나왔습니다. 이어 이불 밖으로 나가려 하더군요. 끌던 이불로 아이 얼굴을 덮고 까꿍 놀이를 해줍니다.


갑자기 이불이 덮쳐오니 재미있는지 아이가 "꺄꺄!" 소리를 내며 웃었습니다. 내친 김에 아이를 이불로 돌돌 말고 직접 탈출하도록 시켜봤습니다. 두 팔을 들고 입을 벌린 채 놀란 표정을 지으며 돌돌 말리더니 열심히 몸을 뒤집으며 빠져나옵니다.

이불썰매는 아이의 전정기관을 자극해 평형감각을 길러주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 옆으로 몸이 쏠리는 것을 느끼고, 균형을 잡으려 몸에 힘을 주게 되는 것이죠. 눈 앞에 아빠가 있으면 시선이 고정돼 균형을 더 쉽게 잡을 수 있습니다.

까꿍놀이는 대상이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계속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네요. 나중에 숨바꼭질로도 이어지는 개념이라고 합니다.

아이가 졸린 듯 이불에 얼굴을 비비면서 놀이가 종료됐습니다. 몇 시간쯤 놀았을까요? 시계를 확인해보니 40분 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도 아내의 도움을 받기까지 했네요.

얼굴에서 땀이 송글송글 나왔습니다. 퇴근하고 잠시 놀아주는 것도 이렇게 어렵고 힘든데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있는 아내는 오죽할까요. 아내의 고마움을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오늘 퇴근길에는 아내가 좋아하는 딸기 케이크를 사볼까 합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