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연 끊었던 아들 "유족급여 달라"…법원 판단은

입력 2021-11-18 11:02
수정 2021-11-18 11:17


산재 사망 근로자의 유족급여 지급 우선순위인 ‘생계를 같이 한 유족'을 판단할 때, 형식적인 주민등록보다 유족이 사망 근로자와 '실질적인 생활 공동체'를 이뤘는지 여부가 더 중요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지난달 19일 서울행정법원 제8부는 사망한 근로자(고인)의 아들 A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청구한 유족급여부지급처분 취소 소송에서 이같이 판단하고 공단 측의 손을 들어줬다.

고인은 2017년 8월 경기도 화성 공사현장에서 의식을 잃고 넘어져 머리를 다치는 사고를 당했다. 이후 뇌병변장애 1급 판정을 받고 치료 중 2020년 1월 요양병원에서 사망했다. 고인에게는 재혼 이후 30년을 함께 산 부인 B가 있었다.

B는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를 신청했고, 공단은 보상금 지급을 결정했다. 그런데 고인이 전처와 낳은 아들인 A는 “B가 아닌 나에게 유족보상일시금을 지급해 달라”고 주장했다. A는 아버지의 재혼 이후 30년간 연락을 끊고 살았다.

A는 공단이 자신의 요구를 거부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A는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 “B는 사망 당시 고인과 생계를 같이 하고 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B는 사고 이후 제대로 치료를 돕지 않아 결국 내가 직접 2018년 6월 고인을 요양병원으로 전원시키고 사망할 때까지 치료와 간병을 전담했다”며 “B는 장례식장에도 오지 않았지만 (나는) 장례를 지내고 비용도 부담했으며, 고인은 요양병원 전원 이후 주민등록상으로도 나와 세대를 함께 했다”고 강조했다.

산재보험법은 유족보상연금 수급자 순위에서 배우자를 최우선으로 두고 있다. 다만 배우자가 근로자와 ‘생계를 같이 한’ 경우가 아니라면, 근로자와 생계를 함께한 자녀가 수급권자가 될 수 있다.

밝혀진 바에 의하면 고인과 B는 결혼 이후 기초생활 수급자로 선정되는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왔고, 고인의 근로소득으로 생활을 함께 꾸려왔다. 고인의 사고 이후에도 B는 고인의 기초노령연금과 간병비, 휴업급여 등으로 의료비를 지출하고 남는 돈으로 생활을 해왔다. 이후 B는 고인을 화성의 노인전문 요양병원에 입원시켜 간병했다.

반면 A는 고인과 자신의 모친이 이혼한 이후 30년 이상 고인과 거의 연락을 주고 받지 않다가, 사고 소식 이후 B의 동의를 얻어 고인을 자신이 사는 집 근처의 요양병원으로 이송해 간호했다. 이후 고인의 주민등록을 자신의 주민등록상 주소지로 이전하기도 했다.

결국 쟁점은 B를 고인과 ‘생계를 같이 한’ 배우자로 유족급여 수급권자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A는 B가 고인과 주민등록상 주소지도 달라 ‘생계를 같이 했다’고 보기 어려우며 오히려 자신이 주민등록상 생계를 같이 한 유족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법원은 공단과 B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생계를 함께 한 유족’이란 주민등록표상 세대를 같이 한 유족으로 한정하는 게 아니라 근로자의 소득으로 생계의 전부 또는 상당 부분을 유지한 경우를 포함한다”며 “사망 당시 고인과 주민등록지가 달랐다는 사정만으로 B가 ‘생계를 같이한 유족’이 아니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법원은 또 “산재보험법상 유족급여는 근로자 사망 당시 그가 부양하던 유족의 생활보장을 목적으로 한다”며 “B는 30년 이상 망인과 생계를 같이하면서 망인의 소득과 급여로 생계를 유지해 왔지만, A는 30년 이상 고인과 연락을 주고 받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A는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던 고인의 주민등록상 주거지를 자신의 주거지로 옮겼을 뿐 실제로는 동거하지 않았다”며 “이런 점을 고려하면 B가 A보다 선순위로 보인다”고 판단해 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기업에서도 유족 보상금을 지급할 때도 우선순위를 두고 유족 간 다툼이 비일비재하다”며 “서류상 주민등록표 등 형식적인 것보다 실제로 고인과 동거를 하면서 생활 공동체를 이뤘는지를 더 중요하게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