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거면 대학평가를 뭐하러 합니까. 학령인구 절벽이 코앞인데 탈락 대학을 떠안아서 어쩌겠다는 건가요.”
국회 교육위원회가 교육부의 대학 기본역량 진단 평가에서 탈락한 대학들을 구제하기 위해 나섰다는 소식에 한 사립대 총장이 보인 반응이다. 교육위는 지난 16일 전체회의를 열어 올해 정부 재정지원을 받는 대학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2022년도 교육부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예산 1210억원을 추가 편성해 평가에서 탈락한 52개 대학 중 27개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대학들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역시 정치권에 떼쓰면 들어준다”는 비아냥도 나온다. 올해 평가에서 탈락한 인하대, 성신여대 등 52개 대학은 평가 결과에 극력 반발해 교육부 앞에서 원정 시위를 벌였고,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인하대 동문이자 지역구가 인천인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번 변경안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박 의원은 교육위 여당 간사를 맡고 있다.
물론 평가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아 대학들의 집단반발을 불러일으킨 교육부에도 책임이 있다. 하지만 국회의 이번 결정으로 국가적으로 시급하게 추진해야 할 대학 구조조정에 힘이 빠지게 됐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대학진단 평가는 정부가 대학 구조조정을 위해 쓸 수 있는 방편 중 하나다. 국회의 뒤집기로 그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앞으로 교육부가 더 강경한 구조조정안을 내놓더라도 정치권을 등에 업으면 얼마든지 결과를 뒤집을 수 있다는 걸 대학들이 인식했다는 얘기다. 당장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탈락 대학 모두에 재도전 기회를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권이 여론의 눈치를 보는 새 학령인구 감소의 쓰나미는 시시각각 밀려오는 중이다. ‘지방 명문’으로 불리는 부산대, 경북대마저 올해 사실상 미달 사태를 피하지 못했다. 2024년부터는 신입생 미충원 규모가 10만 명을 넘어선다. 이대로 가면 10년 뒤에는 국내 대학 절반이 파고에 쓸려나갈 판이다.
정부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 들어 대학 정원 감축 실적이 박근혜 정부의 43%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초과 정원을 해결하기 위해 2023학년도까지 입학 정원을 약 9만명 감축해야 한다고 권고했지만, 이행 실적은 지지부진하다.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도 모자랄 판에 정치권은 예산을 늘려 ‘부실 판정’을 받은 대학들까지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미래를 가불해 오늘만 살자’는 식의 포퓰리즘이 경제뿐 아니라 교육에까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