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개발자"…NFT로 게임 조립 열풍

입력 2021-11-17 17:21
수정 2021-11-18 01:26
지난 8월 독특한 형태의 대체불가능토큰(NFT)이 공개됐다. 프로젝트명이 ‘루트(Loot)’인 이 NFT는 검은색 배경에 게임 아이템으로 추정되는 8개의 단어만 나열돼 있었다. 가령 ‘가방(bag) #2745’ NFT엔 유령 지팡이, 셔츠, 고대의 투구 등 8개 단어가 적혀 있었다. 이런 NFT가 총 7777개나 됐다.


일반인은 정체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이 NFT는 그러나 출시 즉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이달 17일까지 약 두 달간 루트 NFT의 누적 거래액은 2억6000만달러에 이른다.

이 NFT를 개발한 돔 호프먼에 따르면 루트는 가상의 롤플레잉 게임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다. 하지만 게임 아이템부터 규칙, 세계관 등 아무것도 정하지 않았다. 프로젝트 참여자들이 루트 NFT를 기반으로 모든 것을 창조할 수 있게 했다. 실제 루트 NFT를 거래한 사람들은 삼삼오오 커뮤니티를 형성해 게임을 설계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NFT업계에선 루트 안에 담긴 철학에 주목하고 있다. 바로 ‘다수의 시장 참여자에게 힘을 실어주자’는 것이다. 기존 게임은 아이템 종류와 노출 빈도, 규칙, 세계관 등을 개발사들이 결정하고 사용자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구조로 설계된다. 게임 관련 수익도 대부분 개발사가 가져간다. 이런 ‘하향식’ 구조를 ‘상향식’으로 바꾸자는 게 루트의 지향점이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게임인 만큼 개발사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개발사에 많은 돈을 주고 게임 아이템을 살 필요도 없다. 향후 루트 게임이 완성되면 게임에서 창출되는 이익은 오롯이 프로젝트 참여자에게 돌아간다.

NFT와 NFT의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은 소수의 플랫폼 기업, 금융기관 등에 쏠린 권력의 ‘분산화’를 추구한다는 철학에서 탄생했다. 루트 프로젝트는 이 철학을 제대로 구현하려는 실험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비슷한 맥락에서 창작자에게 보다 많은 수익을 돌려주자는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다”는 모토를 가진 NFT 기업 오리진프로토콜이 이를 잘 보여준다.

NFT는 그림 파일, 동영상 등 디지털 콘텐츠에 고유한 인식값을 부여해 ‘원본’을 지정한 것을 말한다. 무한 복제가 가능해 가치를 매기기 어려웠던 디지털 콘텐츠에 희소성 있는 가치가 생겨 거래할 수 있게 됐다. NFT가 처음 나왔을 때 일반인도 좋은 콘텐츠를 만들면 NFT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많았다.

하지만 NFT 시장에서 주로 거래되는 건 이미 유명한 스타 관련 콘텐츠와 NFT 개발사가 내놓은 상품이 대부분이다. 오리진프로토콜은 이런 흐름에 반기를 들었다. 이 기업은 유망 디지털 아티스트와 유튜브 크리에이터 등을 발굴하는 데 힘쓴다. 하워드 데이비스-카 라는 일반인이 자녀들이 노는 모습을 찍은 ‘찰리가 또 내 손가락을 깨물었어’라는 유튜브 영상을 NFT화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NFT는 76만달러에 판매됐다. 오리진프로토콜은 지난 11일 28개 유튜브 영상을 추가로 발굴해 NFT 경매를 한다고 밝혔다.

아티스트·창작자와 그 팬만을 위한 전용 암호화폐인 ‘소셜토큰’이란 개념도 등장했다. 대표적인 랠리와 롤은 최근 각각 5700만달러, 1000만달러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NFT업계 관계자는 “시장 참여자, 창작자가 주도하는 NFT 생태계를 조성하자는 움직임이 갈수록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