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원연합회 추천 여행지 - 전설 따라, 이야기 따라
한국문화원연합회가 들려주는 전설에 귀 기울이는 순간, 여느 곳과 다를 것 없던 산과 강이 판타지 영화의 무대처럼 신비로운 공간으로 보인다.
글 김은아, 사진 한국문화원연합회
◆ 전북 남원 : 춘향이의 러브스토리 무대
▶ 광한루원
엄격한 조선 유교사회에서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 <</span>춘향전>의 무대가 된 광한루원은 남원을 찾는 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재상 황희가 1419년 고향 남원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지은 광한루(당시 광통루)는 평양 부벽루, 밀양 영남루, 진주 촉석루와 더불어 우리나라 4대 누각의 하나로 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만듦새를 자랑한다. 광한루라는 이름은 1434년 중건한 광통루를 보고 정인지가 붙였는데, 달나라에 있는 궁전인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에서 따왔다. 광한루의 아름다움을 남원에서 두 눈으로 확인해보자.
▶ 지리산 퇴수정
지리산 뱀사골 입구 둘레길이 시작되는 매동마을에 위치한 작은 정자다. 이곳은 1870년 매천 박치기가 은퇴 후 여생을 보내려고 지은 정자다. 퇴수정(退修亭)이 라는 이름 또한 나이 들어 은퇴해 자연 속에서 심신을 닦는 정자라는 의미다. 작은 정자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소박하지 않다. 경남, 전남, 전북에 걸친 지리산 줄기가 이어지는 삼도봉 자락에 위치해 뛰어난 풍경을 자랑한다. 특히 봄에는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바래봉이 화려한 꽃동산을 만들어낸다.
▶ 뱀사골
12㎞에 달하는 기나긴 물줄기를 따라 가을 단풍이 흐드러지는 계곡. 아름다운 풍경과는 정반대의 으스스한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오래전 이곳에는 매년 그믐마다 선녀가 내려와 스님 한 명씩을 데리고 하늘로 올라갔다. 사람들은 선택을 받은 스님들이 신선이 되었다고 믿었다. 어느 해, 승천을 앞둔 스님이 친구를 만나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그런데 친구는 두툼한 장삼에 독약을 발라 선물하며 이 옷을 입으라고 부탁했다. 다음 날, 지금까지와는 달리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가 하루 종일 골짜기를 울렸다. 사람들이 밖에 나와 보니 골짜기를 따라 핏물이 흐르고 커다란 이무기가 죽어 있었다. 배 속에는 장삼을 입은 스님이 있었다. 지금까지 스님들을 데려간 것은 선녀로 둔갑한 이무기였던 것. 뱀이 죽은 곳이라는 뜻의 뱀사골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다.
◆충북 단양 : 온달장군의 용맹함이 깃든 고장
▶온달산성
단양은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 지역이다. 그중에서도 온달산성은 고구려 장군인 온달이 신라와의 전쟁 때 이 성을 쌓고 싸우다가 전사했다고 전해지는 곳. 남한강 변 해발 427m 에 세워진 산성은 둘레 683m, 높이 3m로 소규모에 속한다. 단양은 삼국시대에 고구려와 신라의 치열한 영유권 분쟁이 있던 곳으로, 제천과 단양으로 가는 길을 단속해 적을 막기 위해 쌓은 견고한 금성철 벽이다. 험하고 가파른 절벽 윗부분에 있는 산 언저 리를 둘러싸서 축성했기 때문에 남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온달관광지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전설을 테마로 한 공간들이 모여 있는 여행지. 온달전시관, 온달산성, 온달동굴 등을 한곳 에서 둘러볼 수 있다. 화려한 건물이 이국적인 분위기로 꾸며져 있는 덕분에 드라마 촬영장소로도 각광받은 곳. <</span>연 개소문> <</span>태왕사신기> <</span>바람의 나라> <</span>천추태후> 등 대작들이 모두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가을은 단양으로 여행을 떠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매년 9~10월마다 온달관광지와 단양읍에서 단양문화원이 주관하는 온달문화축 제가 열리기 때문. 1996년부터 시작돼 2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축제는 온달장군 진혼제, 온달장군 선발대회, 온달산성 전투놀이, RPG게임, 고구려 승전연희, 마당극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꾸려진다.
▶도담삼봉
수려한 경관으로 단양팔경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도담삼봉. 남한강 한가운데 떠 있는 세 봉우리의 아름다운 풍경은 많은 이에게 영감을 주었고, 시와 그림의 주제로 삼았다. 특히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은 자신의 호를 삼봉(三峯)이라고 지을 정도였는데, 그 배경으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고려 후기에 큰 홍수가 나서 강원도 정선에 있던세 봉우리가 충북 단양까지 떠내려왔다. 정선의 관리들은 봉우리가 있는 곳까지가 정선이니 세금을 내야 한다고 주장 했고, 마을 사람들은 몇 년이나 단양과 정선에 이중으로 세금을 내며 고통에 시달렸다. 그런데 어느 해 한 소년이 나서서 용기 있게 세금을 내지 않겠다고 말했다. “세 봉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마을 사람들의 뜻이 아니며, 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를 보고 있으니 다시 옮겨가라”는 것이었다. 소년의 똑 부러진 말에 관리들은 반박할 수 없었고 단양 사람들은 불합리한 세금을 내는 일이 없었다. 바로 이 소년이 정도전이었다고 전해진다.
◆경북 영주 : 선비 정신이 숨 쉬는 곳
▶소수서원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 서원이다. 주세 붕이 다른 곳도 아닌 영주에 서원을 연 까닭을 살펴보려면 유교의 뿌리를 들여다봐야 한다. 송대 성리 학을 우리나라에 들여온 문성공 안향의 고향이 바로 영주의 순흥마을이기 때문이다.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은 ‘이곳에서 유교의 가르침이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백운동서원을 세웠고, 이와 함께 안향을 기리는 사당 건립에 나섰다. 적지 않은 인력과 재정이 드는 사업이다 보니 마을 사람들의 비판도 잇따랐다. 그러나 주세붕은 “사람이 사람다운 이유는 가르침이 있기 때문이니, 교육은 난리를 막고 굶주림을 구하는 것보다 급한 일이다. 가르침은 어진 사람을 높이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말로 사람들을 설득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곡식을 기부하는 등 그의 뜻에 동참했다. 주세붕은 자신이 소장한 장서와 기증받은 장서를 합해 500여 권의 책을 비치했고 명실상부한 서원의 모습을 갖췄다. 이후 주세붕의 후임으로 풍기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은 서원 정비에 힘썼고, 명종은 소수서원 이라는 사액을 내렸다.
▶부석사
삼국시대에 신라 의상대사가 세운 절로 유명한 부석사. 옛 문헌에는 의상대사가 절을 짓게된 배경에 대해서도 기록되어 있는데,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의상대사는 불교 교리를 공부하기 위해 떠난 당나라에서 한 불자의 집에 머무르게 된다. 집주인의 딸 선묘는 의상을 사모하게 되어 마음을 전했지만, 오히려 의상은 그에게 불교의 깨달음을 전한다. 이때 선묘는 의상을 영원히 따르기로 마음먹는다. 의상이 화엄사상을 연구하고 다시 신라로 돌아가기 위해 배를 탔으나, 뒤늦게 따라간 선묘는 배에 타지 못하고 ‘스님이 무사히 돌아가 불교 교리를 잘 펼치게 해달라’ 빌고 물속으로 뛰어든다. 그러자 선묘는 용으로 변했고, 신라로 향해 의상이 뜻을 펼칠 수 있게 도왔다. 의상이 그 덕분에 부석사에서 뜻을 펼칠 수 있었 다는 것. 현재 절에는 큰 바위가 있는데, 이것이 용이 된 선묘가 변한 바위라고 전해진다.
▶마구령·고치령
경북 영주시에 있는 마구령과 고치령은 백두대간에서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에 있는 험준한 고개다. 이들 두 고개는 일찍부터 장사꾼과 영주의 부석장을 오가던 사람들이 넘던 옛길이다. 고치령은 단종과 금성대군의 애환을 간직한 고갯길이기도 하다. 행정구역상 경북 영주시에 속하는 마구령과 고치령은 예로부터 백두대간을 넘어가는 험준한 고갯길로 유명했으며 경상도·충청도·강원도를 이어 주는 매개 역할을 했다. 이들 두 고개는 고려시대와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사람과 물자가 오가던 길이며, 보부상들의 애환도 안고 있는 영남지방의 옛길이다.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