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한다’는 말이 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절박하게 노력해도 해결이 어렵다는 우리 선조들의 회한이 담긴 말이다. 현대에도 이는 되풀이됐다. 1991년 소련의 해체로 냉전체제가 공식적으로 종식되면서 전 세계는 평화와 번영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그러나 냉전 이후 오히려 개발도상국들의 빈곤이 심화되자 유엔은 빈곤을 퇴치하기 위해 2000년 ‘새천년개발목표(MDGs)’를 수립했다. 당시 하루 1달러로 살아가는 최빈곤층 인구가 전 세계 인구의 35%인 19억 명에 육박하던 상황에서 1990년 대비 최빈곤 인구를 절반으로 줄이자는 것이었다.
이 목표는 기한으로 잡은 2015년보다 5년 빠른 2010년에 달성됐다. 하지만 MDGs는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선진국, 중진국 내부의 불평등 문제는 간과했기 때문이다. 또한 기후변화 등 환경 문제를 간과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2015년 등장한 것이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다. 개도국·선진국 구분 없이 최빈곤층을 근절하고, 경제 발전을 추진하되 빈곤층 친화적인 사회 발전을 이루고, 환경을 지키는 경제 발전을 추구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특히 선진국은 자국 내 SDGs 달성뿐 아니라 원조를 통해 개도국의 SDGs 이행을 지원할 것을 약속했다.
SDGs 이행은 얼마나 잘 지켜졌을까. 유엔이 발간한 ‘글로벌 지속가능 보고서’는 세계 경제 발전, 빈곤 및 환경 문제, 특히 기후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업이 글로벌 공공재인 SDGs 이행의 핵심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업은 SDGs 이행에 가장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SDGs가 법적 효력을 지닌 국제규범은 아니기 때문에 규제를 통해 기업들의 SDGs 이행을 강제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최근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열풍이 불고 있다는 점은 SDGs 이행에서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ESG의 역사는 사실 SDGs보다 훨씬 길다. 1980년대 세계은행이 개도국에 진출하고자 하는 기업들에 최소한의 환경과 사회 보호 기준인 ‘환경·사회 세이프가드(ESS)’를 요구하면서 확산된 것이 ESG의 첫 출발이다. 아시아개발은행, 미국 수출입은행, 일본 수출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등도 세계은행과 유사한 환경적·사회적 보호 기준을 요구하면서 ESG는 민간 기업들의 개도국 진출을 위한 최소 기준으로 자리잡았다.
이제는 기업들도 ESG를 개도국 진출의 필요조건 또는 투자를 위한 기준이나 홍보 수단을 넘어선 ‘그 이상’으로 바라봐야 한다. 진정을 다해 우리 기업들이 ESG를 추구한다면 인류의 염원인 ‘빈곤 퇴치’도 먼 미래의 일은 아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