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리더가 되겠다고 자처하는 사람은 대중을 현혹시키는 거짓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대선 국면에서 최근 유권자들의 눈을 흐리게 한 대표 발언을 꼽자면 “부자 나라에 가난한 국민이 온당하냐”일 것이다. 여당의 대선 후보가 전 국민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을 요구하며 한 말로, “올해 초과 세수가 40조원에 달할 만큼 정부 곳간이 넘치는데, 가난한 국민을 돕지 않을 거면 무슨 소용이 있냐”는 주장이다.
유권자들 가운데 “맞아, 그래”라고 손뼉을 치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냉정히 한번 따져보자. 초과 세수, 우선 이 개념부터 잘못됐다. 정부가 예측한 세입예산보다 실제 세수가 더 늘어나 예상보다 더 걷힌 세금을 말하는 것인데, 엄밀하게 얘기하자면 이건 정부의 예측 오류에 따른 장부상 오차일 뿐 여윳돈은 아니다.
정부는 이미 올해 예산을 짜면서 수입보다 지출이 70조원이나 많은 적자예산을 편성했다. 세수가 당초 예상보다 40조원 더 걷힌다 해도 적자분을 메꾸기는 역부족이다. 더구나 그 가운데 30조원은 이미 지난 6월 2차 추경을 하면서 가불해 써버렸다. 나머지 더 걷힐 것으로 예상되는 건 10조원가량인데, 이를 근거로 추가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주자면서 ‘부자 나라-가난한 국민’ 프레임을 꺼내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지난 4년을 되짚어보면 같은 패턴이 매년 반복된다는 걸 알 수 있다. 과거 정부에선 지출을 세입 증가율 범위 내로 엄격히 통제하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이 정부는 매년 지출을 경상성장률 세 배 이상으로 양껏 늘려 잡아놓고 세입은 그 절반 수준으로 적게 잡아왔다. 경제가 순항하던 2017년, 2018년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놓고 적자재정을 편성한 것은 과거 진보 정부 때도 없었던 일이다.
흥미로운 건 세입예산을 적게 잡아서인지 실제 세수는 매번 예측보다 더 걷히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와 여당은 경제를 잘 운영해서 그런 거라 자랑하고 싶겠지만 그게 아니란 건 본인들도 잘 알 것이다. 정책 실패에 따른 역작용으로 부동산 세수가 매년 예상보다 많이 걷히고, 무능한 3류 정부와 정치권이 발목을 잡는 악조건 속에서도 세계 시장을 무대로 뛰는 1등 기업들이 장사를 잘해 해마다 법인세로 내는 돈이 예상을 웃돈 게 컸다.
여당은 이걸 놓치지 않고 잽싸게 추경 편성을 요구하는 근거로 사용하는 것도 반복되는 패턴이다. 이 정부 들어 추경을 편성하지 않은 해는 한번도 없었다. 이 정도면 정부가 추경 편성 근거를 마련해주려고 세입예산을 일부러 낮게 잡은 거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들게 된다.
이 정부가 매년 적자예산을 편성하고 대놓고 부채를 늘리는 탓에 국가가 진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1000조원에 육박해있다. 지난 4년 임기동안에만 400조원 가까이 늘었다. 대부분 적자국채 발행으로 충당했는데, 절반 정도는 발행 이후 수년 안에 갚아야 할 빚이다. 부자 정부가 아니라 빚만 잔뜩 쌓아둔 빈털터리 정부인 셈이다. 더구나 지금 정부가 쌓아가고 있는 빚은 자체 상환이 불가능한 ‘적자성 채무’에 속한다. 국민 세금을 재원으로 갚아나가야 하는 빚이란 뜻이다.
이쯤되면 머지않아 정부 곳간이 비어가는 것을 오히려 국민이 걱정해야 할 지경이 올지 모른다. 부자 정부라는 프레임을 내세워 곳간을 터는 것도 부족해 빚까지 양껏 내는 바람에 정부는 점점 빈털터리가 되고, 이렇게 가난해진 정부를 가난한 국민이 허리띠 줄여가며 세금으로 먹여살려야 하는 상황이 곧 눈앞에 닥치게 될 거란 얘기다.
우리 유권자 수준은 이걸 알 만큼 충분히 지력이 높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 반대여론이 찬성보다 높은 것도 그런 방증이다. 그럼에도 ‘부자 정부의 가난한 국민’ 같은 그럴듯한 수사로 국민을 유혹해보겠다는 건 유권자를 무시하는 처사일 뿐이란 걸 대권 후보는 알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