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 근무 당시 미국 의회의사당을 가끔 가보곤 했다. 의사당 앞을 거닐며 “미국이 로마를 많이 닮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우선 두 나라의 국가문장이 똑같이 독수리다. 유럽의 나라들이 그러하듯 미국도 로마처럼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야심이 있었을 것이다. 다음은 의사당이 있는 캐피틀힐이다. 일곱 개의 언덕을 끼고 건국된 로마의 중심은 제우스신전이 있는 카피톨리노언덕이었다. 아마 가장 신성한 곳으로 여겼으리라. 미국 시스템의 중심은 의회였고, 의사당이 있는 언덕을 그만큼 중요한 지역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이 의회의 상원의원은 임기 6년의 세니터(senator)다.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공직의 하나로 대통령과 하원을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로마도 원로원을 세나투스(senatus)라고 불렀다. 유력 가문의 대표로서 집정관을 견제하고 종신임기를 바탕으로 로마의 안녕을 지켰다.
공통점은 또 있다. 정치체제가 모두 공화제다. 로마는 이후 제정 시대로 바뀌었다. 로마 건국 시 최고 선진국은 단연 그리스 아테네였다. 지중해 모든 나라가 아테네의 직접민주정을 본받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테네를 둘러본 로마 시찰단의 건의는 아테네를 따르지 말자는 것이었다. 미국도 유럽의 왕정 대신 로마의 공화정을 택했다. 유럽대륙에서의 차별과 착취에 대한 반감과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의 결과로 여겨진다. 건국 주역들(founding fathers)의 영감과 용기 있는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이런 여러 공통점 말고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개방성이다. 로마는 피정복민에게도 로마인과 동등한 시민권을 부여하고 포용했다. 부모 모두가 시민인 경우에만 시민권을 부여한 아테네와 대비된다.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아테네 시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결국 폐쇄적인 아테네는 도시국가에 머물면서 쇠퇴의 길을 걸은 반면 로마는 세계 제국으로 성장했다. 개방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역사적 장면이라 하겠다. 미국도 이민자의 나라답게 로마의 개방적 사고방식을 이어받아 열린 국가를 지향했다. 다양한 인재를 불러들여 혁신역량을 높였고, 이를 토대로 세계의 정치, 경제, 그리고 금융을 선도하는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요즘 금융산업에서 개방성은 큰 화두 중 하나다. 정보기술(IT) 발전에 힘입어 마이데이터 등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고 있으며, 오픈뱅킹 등으로 디지털 세계에서 업권의 장벽도 허물어지고 있다. 그 결과 국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편리한 금융서비스를 경험하고 있다. 역사에서 만약은 없다지만, 만일 우리가 금융을 새롭게 설계한다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다. 아마도 은행, 핀테크 등의 구분이 없는 개방형 금융이 아니었을까? 강한 국가의 시작에 개방성이 있듯, 금융 선진국으로 가는 길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