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위 삼성 타도" 美·日의 M&A…SK하이닉스에 발목잡혔다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입력 2021-11-13 07:58
수정 2021-11-13 08:28

세계 2~3위 낸드플레시 업체끼리의 인수·합병(M&A)으로 주목받는 일본 키오시아와 웨스턴디지털(WD)의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다. 중국 정부의 견제와 키오시아의 투자사인 SK하이닉스의 반대 기류에 발목이 잡혔다는 분석이다.

지난 7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키오시아 이사회에서는 중국 정부가 WD와의 합병을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자력으로 반도체 강국에 진입하려는 중국의 반독점당국이 경쟁국인 미국과 일본의 반도체 기업 M&A를 견제할 것이라는 우려였다. 이 때문에 두 회사의 합병작업이 교착상태에 빠졌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WD는 올 봄부터 키오시아 인수를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키오시아와 WD의 M&A가 성사되면 점유율이 33.4%로 상승, 1위 삼성전자(33.5%)와 격차가 사라진다. 6개 업체가 난립한 낸드 시장 구도 역시 2강(삼성전자, WD+키오시아), 2중(SK하이닉스+인텔, 마이크론)으로 재편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8월말 "오는 9월 중순께 협상이 타결될 수 있고, 인수 금액은 200억달러(약 23조3000억원)를 웃돌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미 11월 중순에 접어들었지만 협상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거래 관계자들은 전했다. 키오시아와 WD는 합병 후 본사를 미국과 일본 가운데 어디에 둘 지도 합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과 동시에 추진하던 일본증시 상장(IPO)도 상장 일정상 연내는 이뤄지기 어렵게 됐다.

인수작업이 난항을 겪는 것은 중국의 합병심사를 통과할 가능성이 낮다는 우려 때문이다. 중국은 2015년 '중국제조 2025'를 내걸고 10% 미만인 반도체 자급률을 2025년까지 70%로 높인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미국이 첨단 반도체 장비 등의 수출을 제한하면서 2020년 자급률은 16%에 그쳤다. 중국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메모리반도체는 중국의 중점 분야이기 때문에 중국 당국이 미일 반도체 기업의 통합을 승인할 리가 없다"고 말했다.

2016년에는 미국 퀄컴의 세계 2위 자동차용 반도체 기업인 네덜란드 NXP 인수, 지난 3월에는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회사인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의 일본 고쿠사이일렉트릭 인수가 모두 중국 정부의 승인을 받지 못해 무산됐다.

SK그룹의 반대도 키오시아와 WD의 합병을 지연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SK하이닉스는 작년 10월 미국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부 인수를 합의했다. 하지만 1년이 넘도록 중국에서만 합병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18년 미국 사모펀드(PEF) 운용사 베인캐피털의 컨소시엄에 참여해 키오시아에 투자했다. 키오시아가 WD와 합병하려면 SK의 동의가 필요하다. SK는 중국에서 또다른 반도체 기업의 합병심사가 진행되면 인텔 낸드 사업부의 심사에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해 난색을 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상황도 급변했다. '집콕수요'가 한풀 꺾이면서 낸드플레시 가격이 하락압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WD 주가는 6월에 비해 27% 급락했다. 주식교환 방식으로 거래를 진행할 경우 교환비율도 크게 달라지게 된다.

키오시아의 지분은 베인캐피털(SK하이닉스 투자분 포함)과 도시바가 각각 55%, 40%씩 나눠갖고 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