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030 남성’의 표심을 겨냥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가상자산 게임 등 이들의 관심사를 노린 공약을 내놓는 것을 넘어서 ‘반(反)페미니즘’ 성격의 글까지 SNS 등에 공유하면서 ‘이대남(20대 남성)’ 표심 사냥에 나섰다. 이 후보 측은 “정치적으로 대변되지 못했던 2030 청년의 목소리를 경청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당내 일각에선 “20대 여성은 포기한 것이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재명 “가상자산 과세 1년 유예해야”이 후보는 11일 국회에서 열린 ‘청년, 가상자산을 말하다’ 간담회에 참석해 “가상자산 과세는 주식양도세 부과 시점에 맞춰 1년 유예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이를 당에도 요청했고, 당에서도 깊이 있게 고민해 투자자들이 억울함을 느끼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이날 SNS 글에서 “가상자산 공제한도도 너무 낮아 대폭 상향이 필요하다”며 “세법을 국제회계기준상 금융자산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주장도 있다”고 했다.
가상자산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분류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이 지난해 12월 통과됐다. 이에 따라 내년 1월 1일부터 연 250만원을 초과하는 가상자산 소득에 대해 20%의 세율이 적용된다. 이를 2023년부터 적용되는 국내 주식 양도세(금융투자소득세) 전면 도입에 발맞춰 시행하자는 게 이 후보 측 주장이다. “2030은 친페미니즘 與 혐오” 글 공유도이 후보는 2030 남성들의 정치적 대변자 역할도 자처하고 있다. 이 후보는 지난 10일 SNS에 “2030 청년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정치인이 단 한 명도 없는 것 같다는 청년의 절규를 전하고 싶다”고 적었다. 이 후보는 8일 선거대책위원회 비공개 회의에서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2030 남자들이 홍(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을 지지한 이유’라는 글을 인쇄해 공유했다. 10일에는 ‘홍카단(홍준표 자원봉사단)이 이재명 후보님께 드리는 편지’라는 제목의 글을 SNS를 통해 “함께 읽어보시지요”라며 공유한 바 있다. 8일엔 “여성가족부를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겠다”고 공약하기도 했다.
이 후보가 공유한 게시물들은 공통적으로 2030 남성이 민주당 지지를 철회한 이유로 이른바 민주당의 ‘친페미니즘적 정치관’과 ‘부동산 가격 폭등’을 지목하고 있다. 10일 공유한 ‘홍카단의 편지’에서 글쓴이는 “정부 여당에 포진된 여성운동가 출신 정치인들, 여성 커뮤니티의 일상적인 남성 비하, 군인 비하, 셀 수 없이 쏟아지는 온갖 혐오적 발언, 여기에 염증을 느껴 2030세대에서 민주당 혐오자가 속출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지적했다. ‘무주공산’ 청년표 노리지만…2030세대가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것은 이들이 다른 세대에 비해 특정 후보 지지를 결정하지 않은 ‘스윙보터’ 성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엠브레인이 9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20대 이하 응답자의 69.4%, 30대의 68.3%는 “투표할 후보를 결정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40대(41.5%), 50대(42.4%), 60대 이상(31.2%)을 크게 웃도는 부동층 성향을 보인 것이다.
특히 2030 남성으로부터 압도적 지지를 받은 홍준표 의원이 야당 대선 경선에서 탈락하면서 이들이 이 후보 측의 구애 대상이 됐다는 분석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030세대, 특히 남성 유권자는 전통적으로 특정 정치 세력을 지지하기보다 기득권을 배척하고, 기득권에 대립하는 세력에 투표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이 후보는 민주당 후보지만 문재인 정부와 대립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왔기 때문에 이들에게 지지를 호소할 배경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정권 교체론이 정권 재창출론을 웃도는 상황에서 가상자산 과세 등 이슈를 두고 이 후보와 정부가 대립하는 구도를 보여주는 것도 선거 전략 측면에서 득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가상자산 과세를) 조정 또는 유예하는 선택은 법적 안정성과 정책 신뢰성 측면에서 어렵다고 판단한다”며 반대 뜻을 나타냈다.
다만 민주당 내에선 이 후보가 전통적으로 소수자와 약자, 여성 등의 보호를 정치적 가치로 삼아온 민주당과 거리가 있는 메시지를 공유하는 것이 기존 지지층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후보의 경선 캠프 대변인을 맡았던 이경 대덕대 겸임교수는 “이 후보는 누군가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아선 안 되는 것처럼 남성도 남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당연한 얘기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