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에…코오롱인더 '수소차 소재기업' 변신

입력 2021-11-11 17:34
수정 2021-11-18 16:39
2005년 경기 용인시 마북동 코오롱연구소. 코오롱인더스트리의 멤브레인 담당 이무석 연구원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현대자동차 수소차 개발 담당자였다. “외국 A사에 수소차에 들어가는 수분제어장치 시제품 개발을 요청했는데 가격도 비싸고 품질도 좋지 않습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도 멤브레인을 개발한다던데 함께 제품을 개발할 수 있겠습니까.”

2006년 수분제어장치 연구개발을 시작했다. 2013년 1세대 수소전기차 투싼에 제품을 공급하는 데 성공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가 수소차 소재 기업으로 변신한 순간이다.

○車 핵심 소재 기업으로 변신이 연구원은 현재 연료전지담당 상무다. 그는 “그동안 자동차 엔진은 금속의 영역이었지 화학의 영역이 아니었다”며 “자동차산업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화학 소재 회사인 코오롱인더스트리가 자동차 엔진 소재·부품을 만드는 회사로 변신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기존에 타이어코드, 내장재 등을 납품해 완성차업계의 2~3차 벤더였던 코오롱인더스트리는 현재 1차 벤더로 거듭났다. 탄탄한 본업 실적에 수소산업 성장에 대한 기대가 더해지면서 올해 이 회사 주가는 90% 이상 뛰었다.

백영찬 KB증권 연구원은 “내년에는 10년 만에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역사적 고점이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이 회사 주가는 2011년 7월 12만9000원으로 고점을 찍었다. 지난 9월 11만4500원까지 올랐다가 조정을 거쳤다. 11일 종가는 7만9100원이다.

전기차·수소차로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엔진도 기계공학이 아니라 전기·화학의 영역으로 이동했다. 수소와 산소 간 화학적 반응으로 전기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멤브레인이 곳곳에 사용된다. 수소이온(프로톤)을 선택적으로 투과시키는 제품이 고분자전해질막(PEM: proton exchange membrane)이다. 이때 수소이온이 잘 전달되려면 수분의 도움이 필요하다. 전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나온 물이 멤브레인을 통과하면서 가습기 역할을 한다. 코오롱인더스트리가 만드는 수분제어장치(Humidifier)다. 수소연료전지 내에서 전기를 잘 생성하도록 내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역할을 한다.

자동차 소재 부품 회사로 변신하는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이 상무는 “멤브레인은 얇고 약한 소재인 만큼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소재의 기본 특성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며 “결국 소재의 물성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과 설계를 바꾸는 방식으로 내구성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2013년 처음으로 제품 공급에 성공하고 나니 자신감이 붙었다고 한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현대차그룹이 2023년 출시하는 신형 넥쏘를 비롯해 다양한 수소 모빌리티에 수분제어장치를 공급할 예정이다. ○수소 생태계 구축미국 고어사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PEM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PEM에 양극재와 음극재를 코팅한 막전극접합체(MEA: membrane electrode assembly)도 생산한다. 후발주자지만 국내에서 유일하게 PEM과 MEA 기술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수소산업의 확장성은 무궁무진하다. 이 상무는 수소산업을 유목민이 소를 끌고 다니다 남는 우유를 처리하기 위해 치즈를 만들었던 것에 비유했다. 에너지 발전량이 들쑥날쑥한 신재생에너지의 특성상 전기에너지가 넘치는 때도 생기기 마련인데, 이를 대규모로 저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상무는 “남는 전기를 다시 역반응시키면 수소가 나오고, 이 수소를 저장·유통하면서 에너지 캐리어 역할을 하도록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코오롱그룹은 그룹 차원의 수소 사업단을 만들고 수소 생태계 구축을 준비하고 있다. 코오롱글로벌(풍력 발전) 코오롱글로텍(수소 보관 및 유통) 코오롱인더스트리(수소 소재) 코오롱플라스틱(수소차 부품) 등이 대표적이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