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를 시작한 지 1주일 만에 위중증 환자가 400명대로 올라섰다. 60세 이상 고령층을 중심으로 ‘돌파감염(백신 접종을 마치고도 코로나19에 걸리는 것)’이 급증한 영향이다. 상황은 나빠지고 있는데, 정부는 위드 코로나 적용 후 방역 위험도를 평가할 기준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의료계에선 “이대로 가다간 이달 말 위중증 환자가 800명 가까이 치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확진자 절반 이상이 돌파감염
9일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8일 코로나19 위중증 환자는 425명이다. 4차 대유행이 한창이던 지난 8월 26일(427명) 이후 74일 만에 가장 많았다.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이후 최다 기록인 434명(8월 24일)에도 근접했다. 위중증 환자의 80.7%는 60세 이상 고령층이었다. 60대(124명·29.2%), 70대(117명·27.5%), 80대(102명·24%) 순이다.
18~49세보다 일찍 백신을 맞은 고령층의 백신 효과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한 주간 발생한 60세 이상 확진자는 4416명으로 한 달 전(2027명)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났다. “기본접종 후 시간이 지나면서 백신 예방 효과가 감소했다”는 게 방역당국의 설명이다. 백신 접종률이 높은 고령층의 감염 사례가 증가하면서 10월 마지막주 확진자 대비 돌파감염자 비율은 52.9%를 기록했다. 돌파감염이 미접종·불완전접종 비율을 넘어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위중증 환자의 42.6%, 사망자의 44.4%도 접종완료자였다.
고령층이 많은 요양병원·시설에서 집단감염이 이어지고 있다. 전북 남원시의 노인주간보호센터에선 한 이용자가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을 시작으로 총 42명이 집단감염됐다.
방역당국은 체조, 노래 부르기 등 프로그램을 통해 비말이 퍼지면서 추가 감염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경북 고령군의 요양원에서도 지난 3일 한 종사자가 확진 판정을 받은 후 현재까지 67명이 감염됐다. 위드 코로나 새 평가 틀은 ‘깜깜’위중증 환자가 증가하고 있는데 정부는 아직 방역상황과 위험도를 평가할 체계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정부는 애초 이날 새로운 방역상황 평가·관리 체계를 발표할 계획이었다. 위드 코로나 전환에 따라 확진자 규모가 아니라 위중증 환자·사망자 중심의 새로운 평가 틀을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비상계획(서킷브레이커) 기준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이날 방역당국은 “아직 세부적 내용을 확정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발표 및 적용 시점을 다음주로 미뤘다.
이상원 중앙방역대책본부 역학조사분석단장은 “평가 지표가 확정되면 향후 판단의 기준점과 논거가 되기 때문에 사회적 영향이 매우 클 것”이라며 “충분히 숙고할 시간이 필요해 이를 연기하게 됐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선 “위드 코로나 시행 전에 했어야 할 일을 지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상혁 경남의사회 감염병대책위원장은 “새로운 방역 평가·관리 체계를 마련해 놓은 뒤 위드 코로나를 시행했어야 하는데, 순서가 뒤바뀐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방역상황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정부의 적절한 개입이 없다면 이달 말 위중증 환자는 800명대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정부는 ‘먹는 코로나19 치료제’ 도입 시기를 최대한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류근혁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임상시험과 인허가 문제를 정리하고, 외국 사례를 모니터링해 (경구용 치료제 도입 시기를) 내년 2월보다 앞당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40만4000회분 계약 이외에 추가 구매할 수 있는 별도 옵션도 체결했다”고 말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