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성별·종교·장애·성(性)정체성 등 모든 형태의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놓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여당 내 신·구세력 사이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서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는 지난 8일 한국교회총연합회를 방문해 “차별금지법이 현실에서 잘못 작동될 우려가 높은 것 같다”며 “해외에 그런 왜곡된 사례가 실제로 존재하는 만큼 충분한 논의를 통해 국민 합의에 이르러야 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차별금지법에 대해 “당장에 닥친 위험 제거나 반드시 필요한 현실적 문제해결에 긴급한 사안이라면 모르겠지만 사실 우리 사회의 가야 할 방향, 지침 같은 것”이라며 “우리 사회 구성원의 높은 시민의식에 터 잡아서 오해는 불식하고, 왜곡되거나 아니면 잘못 적용될 얘기들은 배제하고 충분한 논의와 토론으로 얼마든지 사회적 합의에 이를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 움직임에 이 후보가 ‘속도 조절’을 주문한 것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후보는 지난 6월엔 “(차별금지법 제정)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청와대의 지지를 등에 업고 차별금지법 제정에 속도를 내려던 민주당 의원 사이에선 당황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비공개 참모회의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이제는 검토할 때가 됐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박완주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지난 2일 “지금까지는 논의조차 못했는데 여야 정책위가 주관해 정기국회 안에 공론화하는 작업을 할 것”이라고 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9일 “내년 대선을 앞두고 기독교계를 자극하는 등 불필요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는 차별금지법을 강행하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게 당내 대체적인 기류”라고 귀띔했다.
이날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의사를 밝힌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전날 이 후보의 발언을 모두 싸잡아 “두 분 모두 차별금지법 제정을 다음에 하시려거든 대통령도 다음에 하시라”고 비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