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머티즘관절염 등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엔브렐은 한 해에 70억달러(약 8조3000억원)어치가 팔리는 블록버스터 의약품이다. 몸속 종양괴사인자(TNF)와 TNF 수용체의 결합을 막아 관절 사이 염증을 차단한다. 엔브렐 원개발자는 2011년 노벨상 수상자인 브루스 보이틀러 미국 사우스웨스턴 텍사스대 교수. 세계적 면역학자인 그가 국내 바이오벤처기업에 공동 창업자로 이름을 올린 곳이 있다. 올해 초 설립된 이뮤노디자이너스다.
오성수 이뮤노디자이너스 대표(사진)는 최근 기자와 만나 “노벨상 수상자가 한국에 바이오벤처를 세운 첫 사례”라며 “보이틀러 교수와 함께 면역항암제 노블 타깃 ‘IMD-1’을 발굴해 검증하고 있다”고 했다. 노블 타깃은 ‘새로운 타깃’이란 뜻이다.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도 노블 타깃인 PD-1이 있었기에 개발이 가능했다. 엔브렐과 휴미라, 레미케이드 등 자가면역질환 치료제가 노블 타깃이었던 TNF를 공략한 것도 마찬가지다. 오 대표는 “PD-1을 타깃하는 키트루다 같은 신약이 아니라 PD-1 같은 타깃을 발굴하는 게 핵심 사업”이라며 “리스크가 크지만 성공하면 성장성과 확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이뮤노디자이너스는 보이틀러 교수가 발굴하는 신규 타깃 2~3개를 추가로 들여올 계획이다.
이뮤노디자이너스에 내년은 ‘운명의 해’다. 오 대표는 “우리가 발굴한 노블 타깃을 공략할 수 있는 항체가 내년 초 나온다”며 “이 항체로 실험해보면 우리가 발굴한 타깃이 의미가 있는 타깃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이뮤노디자이너스는 항체 신약을 우선 개발하고 향후 저분자 신약이나 세포치료제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이를 위한 작용기전(MOA) 연구는 2023년께 마무리하는 게 목표다. 오 대표는 “노블 타깃은 아주 초기 단계에서도 글로벌 제약사와 거래가 가능하다”며 “다국적 제약사에 기술이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수합병(M&A) 대상이 되도록 하는 게 우리의 기본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보이틀러 교수같이 저명한 학자가 왜 한국에서 창업했을까. 오 대표는 “벤처캐피털(VC)에서 일할 때 미국의 한 바이오 회사에 투자했는데 보이틀러 교수가 그 회사의 과학기술 자문 역할을 하면서 인연이 맺어졌다”고 했다. 보이틀러 교수는 이뮤노디자이너스의 2대주주다. 최대주주는 오 대표가 공동 창업한 바이오디자이너스다. 이뮤노디자이너스는 최근 산업은행으로부터 100억원의 투자 유치를 확정지었고 VC 투자도 논의 중이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